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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하지 않을 때

by 지나온 시간들

80번 프리웨이를 타고 와이오밍을 지날 때였다. 그날은 유타까지는 가야 해서 부지런히 액셀을 밟았다.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끝없이 이어지던 옥수수밭이 와이오밍에 들어서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프리웨이 주위로는 드넓은 초원만이 펼쳐져 있었다. 주 경계를 지나 내륙으로 들어서면서 도로의 차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와이오밍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넓지만, 인구는 고작 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밀도로 따지면 1제곱킬로미터당 2~3명일 테니 남한의 250분의 1 수준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으니 자동차도 적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사방으로 무한히 펼쳐진 대평원에 넋을 잃고 말았다. 운전을 하며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 지평선이 보였고 백미러로 보니 뒤로도 지평선이 있었다. 그 순간 프리웨이를 타고 가는 내 앞으로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고 내 뒤로도 자동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오로지 하늘과 땅과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드넓은 대자연의 공간에 나 홀로 존재할 뿐이었다. 의지할 것 하나 없이 황량한 그 공간에 혼자서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경이감이 마음속으로 찾아들었다.


그 넓은 대평원의 공간에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서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고 두려웠다. 그 대평원의 공간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도움을 받을 곳도 내가 의지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나 재물이나 지식이나 그 어떤 것에도 이제는 의식적으로 의지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편하게 머무를 곳이 정말 있을까?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모든 것은 다 잠시일 뿐인 듯하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할 때 나는 홀로 설 수 없다. 그 어떤 것이나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을 때 나의 삶이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와이오밍의 대평원에서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 설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삶의 길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나에게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나 스스로 이겨내고 앞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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