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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6. 2022

의지하지 않을 때

80번 프리웨이를 타고 와이오밍을 지날 때였다. 그날은 유타까지는 가야 해서 부지런히 액셀을 밟았다.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끝없이 이어지던 옥수수밭이 와이오밍에 들어서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프리웨이 주위로는 드넓은 초원만이 펼쳐져 있었다. 주 경계를 지나 내륙으로 들어서면서 도로의 차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와이오밍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넓지만, 인구는 고작 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밀도로 따지면 1제곱킬로미터당 2~3명일 테니 남한의 250분의 1 수준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으니 자동차도 적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사방으로 무한히 펼쳐진 대평원에 넋을 잃고 말았다. 운전을 하며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 지평선이 보였고 백미러로 보니 뒤로도 지평선이 있었다. 그 순간 프리웨이를 타고 가는 내 앞으로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고 내 뒤로도 자동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오로지 하늘과 땅과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드넓은 대자연의 공간에 나 홀로 존재할 뿐이었다. 의지할 것 하나 없이 황량한 그 공간에 혼자서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경이감이 마음속으로 찾아들었다. 


 그 넓은 대평원의 공간에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서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고 두려웠다. 그 대평원의 공간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도움을 받을 곳도 내가 의지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나 재물이나 지식이나 그 어떤 것에도 이제는 의식적으로 의지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편하게 머무를 곳이 정말 있을까?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모든 것은 다 잠시일 뿐인 듯하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할 때 나는 홀로 설 수 없다. 그 어떤 것이나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을 때 나의 삶이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와이오밍의 대평원에서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 설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삶의 길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나에게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나 스스로 이겨내고 앞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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