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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24. 2022

노을(친구에게 2/24)

친구야,

  제주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애월에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를 천천히 산책했어. 해가 뉘엿뉘엿 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이나 노을을 바라보았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는 것 하고는 많이 다르게 나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내가 보내는 사진 한 번 보길 바래.


  노을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낮의 뜨거웠던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니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해.


  태양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바닷속으로 사라지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좋지 않은 것도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오면서 받았던 아픔과 상처, 홀로 되었을 때 느끼는 외로움, 누군가를 싫어했던 미움, 참을 수 없는 분노, 부당한 대우로 인한 서러움, 견딜 수 없었던 고통, 이러한 것들이 저 태양이 노을을 남기고 사라져 버리듯 그렇게 한꺼번에 다 없어져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태양은 저렇게 사라지면서 아름다운 노을이라도 남기는 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은 좋지 않은 일들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도 않고 사라진다고 해서 남겨지는 것은 치유받지 못하는 그러한 곯아버린 상처인지도 몰라. 그 상처는 영원히 삶의 흔적으로 남아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우리의 앞날을 방해하기도 하는 것 같아. 우리 삶에는 저 태양처럼 사라지고 나서 아름다운 노을이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긴 하는 걸까? 노을이 사라져 깜깜한 밤이 되면 저 높은 하늘에 별이 나와 빛나듯 그렇게 우리의 아픔과 고통도 언젠가 빛나는 은하수 속의 별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런 희망이라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지는 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노을도 다 사라져 버렸어. 이제 주위는 어두컴컴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까지 한참이나 바닷가에 앉아 있었어. 아직 별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바닷가를 걸었지. 어두워져서 그런지 갑자기 추위가 몰려오길래 할 수 없이 차로 돌아왔어. 한참이나 머물렀던 그 자리를 떠나 다시 해안 도로를 타고 달렸어.


  친구야,

  네가 가지고 있는 아픔과 상처도 저 바닷가의 노을처럼 언젠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길 바래. 시간이 지나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러한 희망이라도 품어보도록 하자. 어두운 밤에도 별이 빛나듯이, 아무리 어려운 우리의 삶의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별이 오롯이 빛나고 있을 거라고 믿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주에 와서 내가 보던 노을을 같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면서 오늘은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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