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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r 01. 2022

영원한 승자는 없다

고구려 제15대 미천왕은 소금 장수였다. 14대 봉상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동생인 돌고를 죽였다. 돌고의 아들이 바로 후에 미천왕이 되는 을불이었다. 당시 봉상왕은 돌고와 함께 아들인 을불마저 죽이려 하였다. 돌고는 아들의 죽음을 예언해 측근으로 하여금 을불을 미리 죽음에서 도피시켰다. 이에 을불은 7년여를 소금 장수를 하며 숨어 지냈다.


  봉상왕의 폭정에 고구려 조정은 반정을 준비했다. 그 중심엔 국상인 창조리가 있었다. 창조리는 여러 중신들과 힘을 합쳐 봉상왕을 몰아내고 을불을 왕으로 옹립했다. 이가 바로 고구려 15대 미천왕이다.


  미천왕은 서기 300년부터 이후 30년 동안 고구려 왕으로 재위하면서 고구려를 동북아 최강국으로 거듭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가 소금 장수를 하며 가장 밑바닥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아픔을 겪어봤기에 누구보다도 백성의 삶을 알고 있었다. 이에 백성을 위한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해 경제력과 국방력을 키워나갔다. 북방 민족들의 잦은 침략과 약탈을 막기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고구려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강한 국방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의 공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한반도 북쪽을 포함한 만주 일대의 엄청난 영토를 확보하였다. 고조선 당시의 영역이었던 낙랑과 현도 및 대방군을 완전히 무너뜨려 고구려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후 이 거대한 영역의 맹주가 되는 토석을 마련하였다.


  당시 고구려와 경쟁할 수 있었던 민족은 고구려 북서쪽을 기반으로 하는 모용 선비족이었다. 당시 수장은 모용외라는 인물이었는데 많은 소수민족을 흡수하여 하나의 거대한 나라로 탄생하기 직전이었다.


  미천왕은 모용외의 선비족 세력이 더 커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국운을 건 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동북아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고구려와 모용 선비의 경쟁은 미천왕의 승리로 끝나고 모용외는 전쟁 중 사망한다. 이 승리로 고구려는 황하 이북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원한 승리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사유가 16대 고국원왕으로 오른 후 역사의 흐름은 다시 바뀌게 된다. 모용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아들 모용황은 엄청난 병력으로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한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는 크게 패하고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왕후와 모후인 미천왕의 왕후까지 포로로 잡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미천왕의 무덤까지 파헤쳐 미천왕의 시체까지 가져갔다. 그리고 모용황은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니 이것이 바로 연나라며 일개 부족장에 불과했던 모용황은 연나라 제1대 황제로 등극한다. 고구려는 이후 고국원왕이 재위에서 물러날 때까지 연나라의 신하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연나라는 동북아의 모든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고국원왕은 불행히도 백제와의 전쟁 중 사망한다.


  역사는 다시 흘러 연나라와의 전쟁의 한을 풀기 위해 고구려는 다시 강력한 국력을 정비하게 된다. 고국원왕의 손자였던 담덕, 즉 고구려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이 등장한다. 광개토대왕은 미천왕 시절 이상의 강력한 고구려를 완성시키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커다란 영토를 확보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한때 동북아 모든 민족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모용 선비족은 각지로 흩어지게 되고, 그렇게 강력했던 연나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 이후 모용 선비족에 의한 나라는 지구 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커다란 전쟁을 극복하고 엄청난 승리를 하게 될지라도 그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역사적 사건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승리 후에는 항상 패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영원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흐르는 세월 속에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든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있다. 많은 것을 얻었을 때도 항상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교만과 태만이 내가 이루었던 모든 것을 어느 순간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원한 승자가 없기에 또한 영원한 패자도 없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내일을 준비하는 이에게 또 다른 영광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겸손히 깨어서 준비하고 있는 이, 그가 바로 승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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