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태어나 자란 도시의 한복판에는 조그마한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집에서 냇가까지 5분이면 가는 거리였습니다. 흘러가는 물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아 냇물에 들어가면 무릎도 채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냇물이 흐르는 양쪽으로는 넓고 커다란 둑이 있어 아무리 비가 와도 그 둑을 넘어 물이 넘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다니던 여름 장마철, 엄청난 비가 쏟아져 내리더니 그 조그마한 냇물이 불어나 커다란 둑을 넘어 시내로 흘러들었습니다. 돼지도 떠내려가고, 커다란 가구도 떠내려가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두 다 떠내려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라 미국인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는 집에서 같이 1년을 살았습니다. 12월 중순 두 분이 함께 마트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식료품을 사는 데 산더미같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뒷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아 뒷좌석에까지 물건을 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궁금해서 음식을 왜 이리 많이 사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할머니 하시는 말이 당분간 마트에 오지 못할 수도 있어서 미리 사놓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지나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2주가 넘게 계속되었고, 그렇게 내린 적설량은 무려 2미터를 훌쩍 넘었습니다. 사람은 물론 자동차가 다닐 수도 없었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습니다.
시에서는 비상령이 발령되었고, 주 방위군까지 동원하여 포크레인으로 눈을 퍼서 10톤이 넘는 덤프트럭에 눈을 치우는 것을 본 저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눈은 하염없이 계속 내렸고 할머니 말씀대로 약 3주 이상을 집에 갇혀 지내야 했고, 그렇게 산더미처럼 샀던 식료품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기도 합니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모든 것이 한스럽기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허탈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왜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이해조차 하기가 힘들고,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도 나에게 불쑥 다가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더라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내가 생각했던 것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받아들이기 힘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니까요.
왜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생각하는 것보다는 삶이 원래 그런 것이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은 지구상에 생각보다 많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지구상의 최악의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지금 겪고 있는 사람이 이 커다란 지구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닥친 불행이나 아픔은 그나마 나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엄청난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사람도 어딘가에서 그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받는 아픔과 고통이 어느 정도 되는지 나 스스로 가늠해 본다면 그래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생각지도 않은 일도 지구상의 최악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