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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Jul 16. 2019

영화 <우아한 거짓말> 괜찮다 괜찮다 우아한 거짓말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평범하고 착했던 소녀 천지의 자살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침에 생일선물로 mp3를 사 달라고 조르던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엄마는 딸의 자살을 예감할 수 없었다. 전세 값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를 핑계로 엄마는 천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언니 만지도 요즘 누가 mp3로 음악을 듣냐면서 핀잔을 줬다. 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었지만 엄마와 만지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서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꾸역꾸역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간다. 천지의 죽음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은 그래서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죽음에 천지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연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만지는 그동안의 무심함을 깨닫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화연은 교묘한 방법으로 천지를 따돌렸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야단을 많이 맞아서 산만하고 불안정한 화연은 또래들에게 자주 배척을 당했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자리 잡았다. 부모는 화연의 감정을 수용해 주지 못했고 화연은 친구들을 규합해 천지를 험담하고 뒤에서 조정하면서 드러나지 않은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했다.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를 통한 부정적인 방식으로나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불안한 심리이다. 여자아이들은 분노나 질투와 같은 욕구를 억압해야 한다는 문화에서 성장한다. 드러내 놓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아이들의 따돌림은 은밀하고 비 신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묻혀 버리기도 쉽다. “말해 봤자 소용없다"라는 무력감은 아이들을 깊은 침묵의 세계로 이끈다. 여자는 참아야 하고 공격성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압력 속에서 아이들의 분노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만만한 친구에게로 화살이 향하게 된다. 분노나 경쟁심, 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여자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감정을 억압하고 수용해 주지 않은 결과 마음의 상처로 남은 상흔은 더 깊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 


감정이 안전하게 표출된 후에라야 통제도 가능해진다. 쉬쉬하고 묻어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고여 있다가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따돌림’도 그중의 하나다. 또 다른 친구 미라는 천지를 따돌리는 화연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천지의 엄마 사이를 알고 난 후 매정하게 돌아선다. 화연의 행동에 동조하던 반 아이들은 천지의 죽음 후 화연에게로 화살을 돌리고 자신들은 발을 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가해자의 등장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학교폭력의 연쇄 고리 속에서 화연은 한순간에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위치가 바뀐다.


세상 일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영화는 사건 이면에 얽힌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여러 층위에서 보여준다. 산 자와 죽은 자, 두 가지 시점에서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를 그저 담담하게 따라간다. 천지의 죽음과 관련한 왕따 문제 역시 단선적인 이유로 접근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에 대한 격앙된 분노 대신 암묵적 가해자의 무관심과 방관에 대해서도 폭넓게 보여준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음을 각자의 입장에서 변명할 기회를 준다. 


작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인데 어쩌면 이토록 모를 수 있을까”라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죽기 전에 천지는 자살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말과 행동을 남겼지만 가족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죽은 뒤에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뼈아픈 통한을 남겼다. 


왜 부모는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걸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천지가 엄마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른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면 생각 없는 철부지로만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도 치열한 정글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치러내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입시 위주의 경쟁구도는 아이들을 스트레스 상황으로 내몰고 내 아이만 뒤처질까 봐 불안한 부모는 통제하고 단속하기에만 바쁘다. 속상한 얘기를 하면 안 그래도 피곤하고 바쁜 부모는 불편하고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야단을 치거나 아예 얘기를 못하게 막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쌓여가지만 속상한 마음을 풀 길 없는 아이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된다. 타인을 괴롭히는 부적절한 방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려는 아이들, 그리고 그 희생양이 된 아이들은 견디다 못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계속되는 악순환의 구조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천지는 착한 딸이었다. 힘든 일을 얘기하면 엄마가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에 죽는 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엄마는 마트에서 일해서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한테 얘기할 수도 없었다. 매사에 쿨한 만지는 천지 얘기에 짜증을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지가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를 해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고 만지는 ‘무관심’이라는 방어기제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다. 엄마와 언니가 천지의 이야기에 미처 귀 기울여 주지 못 한 사이 천지는 아픔을 꼭꼭 묻어둘 수밖에 없었고 담아둔 말은 결국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천지 얘기를 들어주었더라면 만지가 꾸었던 꿈처럼 천지의 죽음은 어쩌면 한바탕의 꿈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 한 사람이 없었다. 잔인한 현실에 내던져진 천지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우아한 거짓말> 속에는 분노가 드러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에 오열하는 모습도 없고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나 복수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일방적인 용서와 복수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천지의 죽음 이후 원망과 분노의 칼날을 겨누기보다는 자신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나아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만지는 동생의 죽음에 가해자 역할을 한 화연과 방관자인 미라에게 복수하는 대신 허물을 끌어안고 돌봐주려고 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미라 자매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 먹이는 천지 엄마 역시 증오와 복수심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 성숙된 자세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이 후회하고 슬퍼하면서 성장하는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천지의 취미는 뜨개질이었다. 빨간색 털실로 크게 뜨고 나면 다시 풀어서 뜨기를 반복했다. 떴다 풀었다를 반복한 것은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천지의 마음이었을까? 털실 안에 하나 둘 비밀을 묻어둔 채 애써 ‘괜찮다 괜찮다’ 우아한 거짓말을 한 천지는 미처 돌보지 못한 우리 모두의 딸이다. 부모에게 수용 받지 못한 감정을 천지에게 풀어낸 화연도,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친구의 죽음을 방관한 미라 역시 또 다른 피해자였다.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갈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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