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날, 한강 둔치에 날렵한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트렌치코트를입은 젊은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홀로 차에서 내린다.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엔 하얀 담배 연기가모락모락 피어오른다.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운전학원에 등록한 것은 나의 이 오랜 로망을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운전은 자유와동의어였고 가고 싶은 곳 어디에나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였다.
꽤 비싼 학원비였지만 딸의 소망을 기꺼이 들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대학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운전학원에 스타트를 끊었다. 혼자 가기 심심해서과 친구 한 명도 미리 섭외를 해 둔 터였다. 부모님의 강력한 유전자 덕분에 태생적으로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순발력이 요구되는 운전을 과연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다 심각한 길치라는 치명적인 핸디캡까지 있었지만 오랜 로망의 실현을 위한 굳은 신념을 꺾지는 못했다.
매일 친구와 함께 연습장에서 실기연습에 몰입했다. 생각보다 운전은 어렵지 않았고 강사의 칭찬을 받으며 금방 우등생으로 등극했다. 반면에 친구는나보다 운전이 서툴러서 꽤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여름방학 동안 성실하게 연습한 친구와 나는 시험에 바로 응시하기로 했다. 필기는 가볍게통과했지만 문제는 실기였다.학창 시절 음악시간,평소 학생들에게 그다지 연민의 감정이 없는 냉담한 선생님한테 조차 배려를 받을 정도로 내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 듯 심하게 떨렸다. 자동 바이브레이션을장착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까지 극심한 불안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수행불안이 높은 나는 모든 실기시험에 약했다.
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실기시험은 금방 닥쳤고 사전에 청심환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요란하게 들썩이는 심장을 꾹 누른채 차에 올랐다.당시에는 코스와 주행으로 나눠서 시험을 봤는데 세 군데 코스를 모두 통과해야 장거리 주행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번째 코스를 무난하게 통과한 뒤 가장 난이도가 높은 세 번째 코스로 진입했다. 후진을 해야 했는데 긴장한 탓에 기어조작이 쉽지 않았다.이리 당기고 저리 밀고하는 사이 그만 시간 초과가 되었다. “OO 씨 탈락입니다. 밖으로 나와주세요” 높낮이가 없는통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지 창피했다.‘처음부터 바로 면허시험에 붙는 사람은 거의 없지’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려 했지만 밀려드는 아쉬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같이시험을 본 친구는 코스를 가볍게 통과하더니 떡하니 장거리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하고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연습할 때는분명히 내가 더 잘했는데’를 아무리 되뇌어봐도 현실은 ‘합격자와 탈락자’라는 냉엄한이분법의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떨어진 나를 위로한답시고 친구는 ‘다음에는 꼭 붙을 거야’라는 아름답지만감동 없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나를 위해 거금을 투자한 어머니는 시험 결과를 듣고 아쉬워하셨지만 기회는 또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여기서 그쳤다면참 좋았겠지만 평소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어머니는 ‘네 친구는 붙었니?’라는 사족을 덧붙이고 말았다. 이 말이 트리거가 되어 참았던 울음보가터졌다.면허시험에 떨어진 것도 하늘이 무너지는 일인데, 나는 떨어지고 친구만 붙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는 분한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방 안 한가득 휴지가 쌓일 때까지 대성통곡을 했다. 하지만 면허증을 따고 나서 실제로운전을 먼저 시작한 사람은 나였고 내가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는 동안 친구는 동네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다시금 연습장으로 출근을 했고 두 번째 시험일자가 잡혔다. 그런데 한 번떨어지고 나니 의기소침해진 나머지 긴장은 더욱 극에 달했다. 코스에 진입하자마자 덜덜 떠느라 남들 다 통과하는 가장 쉬운 코스에서 그만선을 밟고 말았다.“OO 씨 탈락입니다.밖으로 나와주세요”지난번에 이어 통제관의 기계적인 멘트가 신경을 자극했다. 연달아 두 번을 떨어지고도 모자라 세 번째 치른 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답이 없었다. 세 번의 시험에연달아 낙방하고 나니 어느덧 여름 방학이 끝났고 다시 학업에 복귀해야 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못한 찝짐함을 남긴 채 나의 운전시험 도전기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한 번 돈을 내면 합격할 때까지 계속 연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창피한 마음에 더 이상 운전학원에도 가지 않았다. 시간은 대책없이 흘러갔고 해가 바뀌어 다시 여름방학이 되었다. 아까운 돈만 들인 채 자격증도 따지 못했으니 내 속은 속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강변의로망을 이루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에 면허증이 눈 앞에서 연신 아른거렸다. 결국 연습도 한 번 못했지만 일단시험 등록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습하고 바로 시험을 봐도 떨어진 마당에 1년간의 공백기까지 있었으니 이번에도당연히 안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차례로 코스를 통과했다. 통과하고 나니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다.곧이어 장거리 주행시험을 봐야 했다. 코스야 하도 여러 번 해봐서 감이 있었지만 장거리는 첫 도전이었다. 무조건 달려보기로마음먹었다.언덕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강하게 밟았고 신호등과 몇 군데 장애물을 거쳐 주행을 마쳤다. 정신없이 달리느라합불 여부에 대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합격입니다”라는 소리가나를 다시 현실로 데리고 왔다.만감이 교차했다.1년간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때만큼 환호했던 적은 별로 없을 정도다. 그 깟 종이한 장이 뭐라고 1년간 마음을졸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절실했다. 물론 그 덕분에 지금은 수십만 킬로의 운전 경력을 가진, 차 없는 삶을상상하기 어려운 사람이 됐지만 말이다.
면허증이 내 손에 닿지 못하고 번번이 멀어질 때마다 미친 듯이 갖고 싶었다. 무언가를 그토록 절실하게 갈망한 적이없었다.미치게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혹독한 통과의례를치르는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인생을 조금 배웠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나는 시험에떨어져도 친구는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천천히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깨달음도. 그깟 운전면허증이 뭐라고 내 청춘의두 해를 바쳤는지 모르겠지만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배웠다.
면허증의 강렬한 동기 부여가 되었던 한강의 로망은 여전히 이루지 못했다. 홀로 강변에서 여유를 부릴 만큼 삶은녹록지 않았고 긴 머리카락 대신 짧은 커트를 고수한 지도 이미 오래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담배는 꿈도 못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증은 내가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깟 운전면허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