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죄인이 된 당신에게

- 치매는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

나이가 들어 찾아온 치매는 당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기억력 감퇴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도 않는 일을 했다고 우기며 애먼 사람을 잡는가 하면 가족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과거에 섭섭했던 일을 고장 난 테이프처럼 무한 반복하며 식구들을 괴롭혔습니다. 안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당신의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더더욱 무력해졌습니다.


젊은 시절 당신의 아버지는 영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원어민 수준으로 회화 구사가 가능했던 덕분에 영재 고등학교로 초빙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영어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오랜 벗이었고 아버지의 존재를 빛나게 해 주는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찾아온 치매는 한 때의 자랑이었던 영어 실력을 시도 때도 없이 과시하는 통에 창피함은 온전히 자식들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그만 하시라 해도 아무나 붙잡고 영어로 대화를 하는가 하면 병원 진료를 할 때도 의사한테 의학용어를 영어로 얘기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었습니다. 당신은 연신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며 아버지를 잡아끌다시피 해서 진료실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부모님을 옆에서 돌보는 당신 동생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나 엄마의 카톡이 뜨는 순간 당신의 스트레스 지수도 덩달아 치솟았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엄한 소리를 하는 아버지를 참지 못한 당신 어머니의 하소연은 거의 매일 이어졌고 그때마다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 당신의 감정노동도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였습니다. 매번 친정으로 달려갔지만 당신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고민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당신 엄마에게서 톡이 왔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요양원 좀 알아봐라” 당신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더해 자식으로서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입소 전에 건강검진 및 코로나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건강검진을 한다고 둘러댄 후 서둘러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모르시는 당신의 아버지는 오랜만의 외출이 반가운지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애써 외면하며 검사를 위해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필요한 검사를 모두 마치고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창 밖은 한여름이었고 초록의 생명력은 무서울 정도도 집요하게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노쇠한 아버지와 극명하게 대조되어 당신은 잠시 아득해졌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여전히 즐거워 보였습니다. 흥이 나면 노래부터 부르곤 하는 습관대로 흘러간 옛 노래로 들뜬 기분을 표현했습니다. 옛 노래 메들리가 이어지더니 자작곡인 듯한 정체불명의 노래도 등장했습니다. 곧이어 영어로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We are not going home. We are not going home”


번역하면 “우리는 집으로 가지 않아요” 쯤이 될 것입니다. 노래 가사를 듣는 순간 당신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도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당신 아버지도 알았던 것일까요. 이제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지고 볶는 세월이었지만 평생의 반려자와도 이별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일까요. 옆에 앉은 당신의 동생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물을 삼키느라 운전대를 잡은 당신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유독 큰 딸에 대한 사랑이 깊으셨던 당신의 아버지는 동생이 서운하게 여길 정도로 당신만 챙겼습니다. 민망한 마음에 화를 내면 당신의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표현에 서툴렀던 아버지였지만 딸에 대한 사랑만은 감출 수 없어 그 사랑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비어져 나오곤 했으니까요.


요양원에 도착한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소리 지르고 화내는 대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당신이었습니다. 기어이 눈물이 터져 도망치듯 요양원을 빠져나온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부모 심정이 이와 같을까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연민과 죄책감만이 남았습니다.


그날 밤 당신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We are not going home. We are not going home”


한 줄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죄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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