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에있어 줄게요 -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얼굴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초췌한 당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은 눈과 푸석한 피부는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겪고 있는 마음의 지옥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준비 없이 아버님을 떠나보낸 당신이 겪고 있을 상실감과 무력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고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아버님은 아마도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늙고 병든 몸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된다고 여기셨겠지요. 누구나 겪는 죽음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른가 봅니다.
당신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영화 <맨체스터 바이더 씨>를 다시 봤습니다. 아마 제가 본 영화 중에 상실의 아픔을 가장 절절하게 담아낸 영화라서 그랬을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아이 셋이 재가 될 때까지 화마 속에서 구해내지 못한 주인공 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슬픈 아버지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실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리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표정을 지운 리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오열하고 통곡하며 가슴을 쥐어뜯는 대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고 그 아픔이 덜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리의 마음은 울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버렸고 죽음은 사치일 뿐입니다. 죽음으로 평생을 괴로워하고 속죄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조차 그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지옥 같은 나날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요?
사고 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던 리는 형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다시 고향인 맨체스터 바이더 씨로 돌아오게 됩니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그곳으로 말입니다.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조카 양육 문제로 변호사와 상의하는 중에 리는 시시때때로 과거의 고통과 마주합니다. 술을 마시고 취객과 시비가 붙어 두들겨 맞고 유리창을 맨 주먹으로 쳐서 피로 손을 물들여 봐도 괴로운 기억에서 한 치 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l can’t beat it” (버틸 수가 없어)이라고 고백할 땐 참았던 눈물이 났습니다.
구부정한 어깨와 쉰 목소리는 한 남자의 황폐한 내면과 생지옥 속에 갇힌 그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려 합니다. ‘힘 내. 시간이 약이야’ ‘넌 할 수 있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공허만 말임을 알지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해 내뱉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경우야 어떻든 간에 영혼 없는 위로는 당사자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영화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대신 리의 일상을 그저 따라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신이 그랬지요. 어쩌면 제가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연락을 했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아득해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고 싶었던 절절한 마음이 헤아려져서입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제가 감히 그 답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저 당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요…
당신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에서도 헤어 나오기 힘들겠지요.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테니까요. 한 사람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소리 내어 울고 실컷 아파하는 수밖에요.
영화 속에서 형과 아버지를 잃은 리와 패트릭은 배에 올라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삶은 이어가야 하니까요. 봄이 오면 얼었던 땅도 녹고 매섭게 불던 바람도 사라지겠지요. 따뜻한 봄에 우리 다시 만나요. 언젠가 당신이 상실을 받아들이고 아버님을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그날까지 당신 곁에 있어 줄게요.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