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를 이방인 대하듯 하세요
아들은 당신의 자랑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은 아들은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전문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아들 덕분에 당신은 친구나 친척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결혼도 잘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당신은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남몰래 하나 둘 키워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서 아가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부푼 가슴은 며느리감을 보는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며느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놓고 흠잡을 만한 구석은 없었지만 왠지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싫은 내색을 꾹 참고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기까지 당신은 남모르는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시집살이나 시키는 진상 시어머니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부모가 반대한다고 결혼을 물리는 일이 없다는 것도 당신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아들의 결혼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을 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당신의 생각과 달리 며느리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에 당신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작은 실수도 지나치지 못하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기가 죽어서 고분고분하던 며느리는 같은 일이 반복되자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화가 뜸해지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시댁 방문을 미뤘습니다. 당신에게 살갑게 굴던 아들은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 챙기기에만 바빴습니다.
‘결혼하면 아들은 며느리한테 뺏기는 거야’라는 소리를 아들을 먼저 장가보낸 친구들에게 수없이 들은 터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인 당신보다 며느리를 먼저 챙기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속이 상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고 모든 게 며느리 탓인 것만 같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일까지 당신과 의논하던 아들은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고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간 당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불쑥 찾아온 당신의 방문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악순환은 반복되었고 당신은 며느리가 더욱 미워졌습니다.
‘시월드’라든가, ‘’ 시’ 자 붙은 건 ‘시금치’도 싫다’는 며느리들의 푸념이 회자되는 가운데 고부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며느리와 한국 시어머니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집 또한 고부갈등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중국 출신인 며느리는 “20년 넘게 빵과 만두 등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먹어도 아무 문제없이 건강해요. 그런데 어머니는 밥이 보약이라면서 삼시 세끼 쌀밥을 강요하세요.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TV 속 사연은 국적이 다른 나라끼리의 문화 충돌 일 수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밥이 보약이듯 중국에서는 빵이 주식임에도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집의 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의 다름 아닙니다. 국적이 같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천차만별입니다. 결혼했다는 것 만으로, 며느리라는 이유 만으로 내 집안의 문화를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며느리도 어떤 면에서는 외국인과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가다가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우리는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그 사람에게 '왜 빨리 한국 지리를 익히지 않았느냐', '한국말은 왜 이리 서투르냐'고 닦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며느리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시집의 문화에 적응하고 배우라고 독촉합니다. 오랜 세월 익숙했던 친정을 떠나 남편 외에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한 시집은 며느리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랜 유교전통 아래 예의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을 겪고 선성장, 후분배로 일관화 해 온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심리 속에 가족을 운명 공동체로 인식해왔습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했고 자녀는 부모의 희생에 대해 과중한 부채의식을 가진 채 성장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엉겨 붙은 채 채권자와 채무자가 된 상황 속에서 건강한 개별화 과정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결혼 후 자녀와의 갈등이 더 심해지는 것은 자신의 ‘물건’이 타인에게 ‘양도’되었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불편감은 아닐까요? 자식은 ‘빼앗고’ ‘뺏기는’ 물건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언젠가는 자식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로 만족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 제 삶을 찾아 떠난 당신의 아들 또한 훌륭하게 홀로서기를 한 것입니다. 아들의 전화가 뜸하면 서운하고 방문이 늦어지면 화가 난다면 당신은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경계가 명확해야 합니다. 나라 사이에도 국경선을 침범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경계를 넘은 것에 대한 응징입니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지켜야 할 경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처럼 결혼을 한 경우라면 그 경계는 더더욱 잘 지켜져야 합니다. 지나친 간섭과 요구, 수시로 전화하거나 자녀의 집을 사전 허락 없이 방문하는 것도 경계를 침범하는 것의 다름 아닙니다.
고슴도치는 가시 때문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가시에 찔려 다칩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온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으면 숨이 막히고 불편합니다. 개별성을 존중받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 자녀의 보답을 여전히 아름다운 가치로 바라보는 일은 이쯤에서 멈춰야 합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낮고 개인화는 가장 진전된 나라입니다.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아내의 일방적 헌신과 자녀의 복종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출산율은 매우 높습니다.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듯 여기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걱정스러운 상황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잔소리하고 지적해봐야 관계만 나빠지고 당신만 힘들게 할 뿐입니다. 며느리도 이방인 대하듯 한다면 고부갈등은 애초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TV 속의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한국말을 빨리 익히지 않는다고 역정을 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30년 가까이 쓰던 모국어 대신 외국어를 금방 배울 수 있을까요? 이 어머니는 며느리의 고향인 중국에 가서야 비로소 며느리 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며느리 입장이 공감이 된 것이지요.
아들의 결혼 후 당신이 느끼는 소외감, 분노의 밑바닥에는 아들의 독립을 원하는 않는 당신의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떠나보냈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 덕분에 훌륭하게 자란 아들의 독립을 축하해 주세요. 아들을 키우는 동안 당신은 아이의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자녀가 무탈하게 성장한 것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임을 잊지 마세요. 며느리도 당신 아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딸입니다. 낯선 당신의 나라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들 며느리에게 집착하기보다 자녀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고 당신 자신만의 인생을 즐겨 보는 게 어떨까요? 오랜 세월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당신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