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희생도, 당신의 수고로움도 모두 옳습니다 -
“네 아버지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네 할머니는 어떻고! 시집살이를 얼마나 심하게 시켰는데!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제발 좀 그만해요, 엄마.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딸한테 얘기 안 하면 내가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겠니?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더니. 아이고 내 팔자야”
오늘도 당신은 엄마의 넋두리를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 친척들 일로 당신의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당신은 엄마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됩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겪어온 일입니다. 아버지 흉으로 시작해서 친가 식구들의 죄명을 모두 읊은 뒤 종착역은 언제나 “너도 김 씨니까 똑같겠지. 별 수 있겠어?”라는 문장으로 막을 내리곤 합니다. 시집살이의 괴로움과 엄마의 고통을 모른 채 한 아버지, 엄마 마음에 차지 않는 동생에 대한 하소연을 듣는 건 언제나 당신 몫이었습니다.
듣다 보면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인생이 가엾게 느껴지다가도 언제까지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어 화가 납니다. 할머니와 고모와 삼촌이 밉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까지 올라오면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당신을 괴롭힙니다. 엄마 말처럼 ‘나도 김 씨 자손인데 그들처럼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불안감도 엄습합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최근 세대 간 갈등이 부쩍 늘었고 그중에는 엄마와 딸의 갈등도 자주 눈에 띕니다. 격동의 시대를 통과하며 딸과 며느리, 그리고 부모로 살아남아야 했던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와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시대의 가치관과 역할분담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당신은 다짐했습니다. 엄마처럼 희생하지도, 그 희생을 담보로 자식에게 왜곡된 보상심리를 갖지도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엄마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고장 난 테이프처럼 무한 반복되는 엄마의 하소연을 당신이 지금껏 들어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 날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엄마 이제 그만해. 엄마는 단 한 번이라도 내 생각한 적이 있어? 나에게 부모는 엄마만 있는 게 아니야. 아빠도 부모야. 그런데 엄마가 자꾸 아빠 흉을 보고 욕을 하면 나는 자꾸 아빠가 미워지고 아빠가 내 아빠인 게 싫어져. 하지만 부모는 똑같이 내 존재의 뿌리잖아.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 부탁인데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
홧김에 그동안 품어 두었던 말을 모두 내뱉고 나니 가슴 한쪽이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너 아니고는 말할 때가 없어서 그랬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니? 그래 알았다. 너한테는 더 이상 얘기 안 할게. 이제 나는 대나무 숲에라도 가야겠다”
자조와 비아냥이 섞인 말투로 서운함을 표현하는 엄마의 말에 당신은 또 한 번 상처 받았습니다.
당신의 엄마가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는 데에는 어쩌면 당신이 한 번도 제대로 엄마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아서는 아닐까요? ‘또 시작이네.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마음으로 꾹 참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걸 경청과 공감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요?
당신의 엄마는 가부장제가 휘두르는 권력의 희생양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을 강요당했고 공고한 모성신화는 그 자체가 족쇄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자식과 남편, 부모를 챙기느라 한 번도 엄마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무뚝뚝한 당신의 아버지는 의무만 강요할 뿐 당신 엄마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양육이나 가사분담, 집안 대소사까지 모두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이 노동력만 착취당한 당신의 엄마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핏줄인 당신에게 쏟아낼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노인세대는 젊은 세대만큼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당신에게 미칠 영향력까지 생각할 만큼 자기 성찰이 뛰어나지도 못합니다. 엄마의 말에 진심으로 가슴을 열고 공감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핍은 욕망을 낳습니다. 당신의 엄마는 결핍이 충족될 때까지 과거사를 끊임없이 반복할 것입니다.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이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를 탓하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가족을 원망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탐색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당신 엄마의 행동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행동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원망하고 배은망덕하다고 분노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효 문화와 ‘가족’을 유독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유독 자녀와의 분리를 힘들어합니다.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에도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경계를 침범하는 행동을 해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당신의 엄마는 ‘죄책감’과 ‘사랑받고 싶은’ 당신의 욕구를 이용해서 당신을 조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당신 엄마의 인생이 힘들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신 탓은 아닙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화살이 당신에게 향하도록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엄마의 희생 때문에 당신이 고통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 엄마의 희생과 당신이 고통받은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분명히 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 줄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엄마의 슬픔과 분노를 당신 자신의 그것으로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삶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당신의 엄마는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않아도 당신은 나쁜 딸이 아닙니다. 엄마의 사랑과 위로 없이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엄마의 고통스러웠던 세월과 힘들었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되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마다 국경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부모와 자식도 다르지 않습니다. 건강한 마음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당신과 엄마 모두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희생도, 당신의 수고로움도 모두 옳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당신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