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변하니?”라고묻는 당신에게

사랑이 저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의 연인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영화 속 대사가 당신의 대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꿈꿉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현실은 당신이라고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연애의 달콤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배신감이라는 커다란 상처가 남았습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해변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운 당신은 머릿속을 헤집어 연애의 기억이 저장된 뇌의 일부분을 들어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완벽한 봄날이었습니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고 둘 만의 작은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사랑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연인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관계는 균열이 깊어졌고 당신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 듯 사랑이 빠져나갔습니다. 봄날의 따뜻한 온기는 어느새 냉기 가득한 싸늘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은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에 가치를 부여해 왔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은 존재의 불변성과 절대성의 상징이었으므로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으로서 영원한 사랑을 지키고자 했고 <타이타닉>는 순간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간 노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현실의 봄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한참 취해있을 때 갑자기 떠나버립니다. 당신의 연인이 예고도 없이 당신을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화사한 벚꽃은 무수한 잔해만 남긴 채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가고 당신의 사랑도 안타까운 그림자만 남았습니다.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찬란한 봄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여전히 그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오지 않는 문자 메시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당신의 온몸도 덩달아 떨립니다. 비 오는 날 함께 걸었던 거리, 사이좋게 이어폰을 끼고 나눠 들었던 음악, 어느 바닷가에서의 추억은 사랑의 빈자리를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할 뿐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게 마련임을 당신은 모르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봄과 여름 사이의 애매한 어디쯤에서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연애의 시기를 마무리하고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랑을 지키는데 실패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나 있을 법한 환상일지 모릅니다. 불꽃같은 연애의 시간을 통과해 결혼을 하면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연인은 어느새 서로에게 요구만 하는 부부로 바뀝니다. 넉넉하지 않은 돈 때문에, 힘든 일상에 지쳐 에너지가 바닥나면 서로를 보듬어줄 여유는 사라집니다. 갈등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을 안겨줍니다. 장밋빛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는 예전 같지 않은 냉랭함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사랑이 종말을 향해 치닫는 수순입니다.


사랑이 저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싹이 움튼 봄날, 열정으로 가득했던 찬란한 여름이 지나면 일상의 권태가 낙엽처럼 쌓이는 가을이 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메마른 감정만 위태롭게 매달린 겨울을 향해 사랑의 사계절은 저물어 갑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예정된 수순입니다.


건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과학을 빌어 사랑의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사랑은 도파민, 옥시토신 등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영향에 의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처음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서 흥분과 기쁨을 느끼게 되지만 도파민이 분비될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전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타오르는 열정은 언젠가는 식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두 잔의 술로도 충분하지만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셔야 애초에 느꼈던 만족감이 충족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 같은 사랑은 갈등과 고통의 시간은 견디고 나면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듭니다.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옥시토신입니다. 옥시토신은 유대감과 신뢰감을 높여주어 관계가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도파민처럼 짜릿한 자극 대신 편안하고 안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 줍니다. 진통을 겪고 성숙한 단계에 이른 커플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저무는 사랑은 애잔하고 쓸쓸합니다. 갈등하고 아파하면서 결국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라도 사랑이 영원하지 않음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항변하던 상우는 은수와의 사랑을 통해 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토록 원했던 은수를 밀어내게 됩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듯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당신의 사랑 또한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깨졌다고 당신의 가치가 훼손된 것도 아닙니다. 만물이 변하듯 사랑도 변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또 다른 사랑이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이제 안정되고 성숙한 사랑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수천 개의 보릿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 속에 완벽하게 녹아든 상우는 바로 그 순간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언젠가 상우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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