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떨림과 울림' 을 읽고

- 다정한 물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울림 -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유시민 작가는 “학창 시절 김상욱 교수 같은 다정한 선생님을 만났다면 물리를 훨씬 쉽게 이해했을 것”이라 말했고, 이후 그는 ‘다정한 물리학자’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책 ‘떨림과 울림’ 은 과학을 낯설게만 느끼던 이들에게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 같은 주제는 전통적으로 철학과 문학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인문학은 종종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통해 세계를 해석해왔다. 반면 과학은 관찰과 실험, 검증을 통해 객관적인 세계의 법칙을 밝히려 한다. 김상욱 교수는 이 책에서 에너지, 시간, 공간, 엔트로피, 양자역학 등 물리학의 핵심 개념을 통해 삶을 구성하는 구조를 설명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질문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엔트로피를 통해 바라본 삶의 모습이었다. 모든 생명은 결국 죽음을 맞고 무질서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지만, 인간은 그 흐름에 저항하며 질서를 만들어내려 애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라 해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만들어내는 질서와 울림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알려 주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삶에 대입하면,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은 다르고, ‘나의 공간’과 ‘너의 공간’은 같지 않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또한 모든 존재는 고유한 질량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각자의 현실과 감각 또한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물리학은 단지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과의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까지 확장될 수 있다.


김상욱 교수는 고체, 공기, 빛까지도 끊임없이 ‘떨림’이라는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는 빛, 듣는 소리, 느끼는 전자기 현상은 모두 이 떨림의 산물이며, 인간은 그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하는 존재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 고통에 공명하고 반응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서로의 울림이 되어 살아간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김상욱 교수의 통찰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소리와 빛, 감정의 떨림들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떨림의 파장이 만들어내는 울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물질적 증거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단순하고도 단호한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과학은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태도라는 그의 말처럼,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결론을 유보하며, 질문을 이어가는 태도는 과학뿐 아니라 삶 전반에 필요한 자세다.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적 주장과 맹신, 확신 중독을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물리학의 개념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총, 균, 쇠'가 인류 역사를 과학적으로 해석했듯이, '떨림과 울림'은 삶과 존재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과학적 탐구 정신으로 인문학적 질문에 답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인간 존재와 세계를 다층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학문간 경계를 허물어 통합적 사고를 촉진한다.


하지만 그의 ‘다정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전자, 양자역학, 생소한 방정식 등 낯선 개념과 언어는 읽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서 과학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김상욱 교수가 보여준 태도처럼, 나 또한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게 되었다.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는 과학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