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긴 머리로 옆모습마저 가린 여자, 알 듯 말 듯 한 제목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쇼코의 미소>를 독서모임을 위해 다시 펼쳤다.
그녀의 문체는 화려하거나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수묵화처럼 맑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순한 문장은 마음에 돋을새김으로 남는다. 사소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과 혹여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 봐 주저하는 세심함이 문체에 힘을 실어 준다. 무리하지 않고 흘러가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불편한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가슴 한편 이 서늘해져 온다. 작가가 그려낸 인간의 내면 풍경이 내 마음속의 어떤 한 부분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에는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표제작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는 관계, 가족, 타인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복잡한 관계의 미로 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꽁꽁 숨겨 두었던 내 안의 다양한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쇼코, 아픈 손녀의 마음을 받아주고 돌보는 쇼코의 할아버지, 지난 상처로 세상과의 문을 닫은 소유의 할아버지, 남편과의 사별 이후 자신의 삶 대신 딸과 아버지를 보살피는 삶을 택한 엄마, 서른이 될 때까지 꿈을 이루지 못하고 꿈이 자신을 좀먹어 간다고 느끼는 소유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가장 낯익은 타인은 그래서 가족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소유보다는 쇼코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고 소유 역시 할아버지의 삶의 사분의 삶을 알지 못한 채 할아버지를 밀어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할아버지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피붙이에게 더 무심하게 굴고, 편하다는 이유로 자주 상처를 주지만 ‘가족이니까’ 이해하리라 쉽게 믿는다. 누구보다 서로를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도 ‘가족’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깝지만 너무 멀어 닿을 수 없거나 괴로워도 떠나지 못하는 굴레, 아프면서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관계가 가족이기도 하다. 가족에게 조차도 우리는 영원히 타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한순간의 만남, 단 며칠, 몇 년의 만남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정밀하지 못한 나만의 잣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쉽게 가르고 재단한다. 오만을 넘어서 일종의 폭력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엄마를 미워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부모님의 모습은 고작 그분들의 인생 후반기일 뿐이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 당신에게 조차도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어슴푸레한 기억으로 남은, 내가 알 도리가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젊은 날의 부모님 역시 어린아이 눈에 비친 지극히 편협하고 일부분의 모습일 뿐이다. 결국 철이 들고 나서 마주한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부모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르듯이 부모님이 걸어온 시간의 역사를 알지 못한 채 내 눈에 비친 모습 만으로 판단하고,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부모는 ‘그저 그의 일부분일 뿐’ 이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친정아버지도 소유의 할아버지처럼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으신 분이었다. 시대와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 여전히 아버지의 속내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문득문득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은 분명 있었고 그 사랑은 큰 딸인 나에게 유독 더했다. 하지만 간절한 사랑의 언어를 나는 자주 무시했다. 낯선 타인보다 더한 냉기를 뿜으며 아버지를 저만치 밀어내곤 했다. 받은 상처는 부풀려서 생각했고 덤까지 두둑하게 얹어 돌려주었다. 가족은 그렇게 서로에게 타인이었고 때로 타인보다 더 먼 존재이기도 했다.
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 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다고 느꼈고 그 두렵고도 흥분되는 기분에 취해서 더 많은 선을 넘어 버렸다
소설은 쇼코와 소유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굴곡을 각기 다른 빛깔로 보여준다.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결이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지점에서는 서로 통하지만 또 어떤 지점에서는 어긋난 채 접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소유는 쇼코의 그늘을 보지 못했고 현재 모습만 보고 후회하며 떠나온다. ‘고작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네 꿈을 포기할 거냐’며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남긴 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한 ‘꿈’을 꾸게 될 줄은 소유 자신도 미처 몰랐을 테니까.
소설 속 한 문장이 평소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던 내면의 감정을 ‘툭’하고 건드릴 때가 있다. 살짝만 건드렸음에도 고여 있던 감정이 열린 둑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때의 치기와 오만, 이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들 생각이 났다. 마음이 아팠다.
관계는 언제나 어렵다. 이유를 모른 채로 떠나가기도 하고 내가 먼저 떠나오기도 한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영원히 타인으로 남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인 게 삶이다. 관계 속에서 받은 수많은 상처를 간직한 채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밥을 먹고 홀로 길을 떠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곱씹고 상처 준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미워한다. 하지만 저마다의 통과의례를 겪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갱생하려고 시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으로 인도하는 작가의 필력을 따라가다 보면 덮어두었던 오랜 상처와 고통을 통해 인물들의 깊은 속내에 닿을 수 있게 된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 라고 말해왔다. <쇼코의 미소>는 그녀의 이런 단단한 다짐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 타인의 상처에도 예민하다. 작가는 희미한 생채기도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 여린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독하게 따져 묻고 싶을 정도로 인생이 녹록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펼치면 작은 위로가 될 것 같다. 비록 순간의 위로, 속은 셈 치고 믿어보는 마음일지라도 이렇게라도 견디고 싶어질 때가 누구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