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춤을 춰야 할 때

박영 <불온한 숨>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마, 오직 너의 춤을 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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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Persona)는 로마시대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서 쓰던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다. 사람(Person)과 성격(personality)의 어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마이크가 없어서 넓은 공연장에서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커다란 고깔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를 가면에 붙이고 인물의 감정을 그린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심리학적으로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쓰는 사회적 가면 또는 사회적 얼굴을 의미한다. 칼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 의무 등에 따라 자신의 본성 위에 덧씌우는 사회적 인격을 ‘페르소나’라고 명명했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일종의 ‘가면’을 씀으로써 극복하기 위함이다. 가면도 여러 종류의 가면이 존재하듯 페르소나 또한 특정 페르소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 직장, 학교, 친구 관계 속에서의 페르소나는 각각 다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얘기다.


자신의 민낯을 감추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페르소나를 쓰고 행동하는 일은 적절한 보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 마음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반영함으로써 세상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해서 페르소나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본래의 모습 이상으로 지나치게 확장될 경우, 개인은 페르소나 안에서 열등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의식하는 ‘나의 본모습’과 ‘가면속의 나’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심리적 갈등과 고민은 깊어진다.


박영의 소설 <불온한 숨>의 주인공 제인은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영국여자의 가정에 입양되었다. 영국 여자가 제인을 입양한 이유는 죽은 자신의 딸과 닮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자는 딸이 살아생전 입었던 발레복을 입히고 발레 슈즈를 그녀에게 신긴다. 이후 제인은 발에서 피가 나도록 춤을 춰야 했다. 몸이 자라 신발이 맞지 않아도 억지로 슈즈 속으로 발을 욱여넣었다. 더 이상 제인으로 보이지 않을 까봐, 영국여자에게서, 그리고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철저히 감정을 숨기고 욕망을 감춰야 했다.


제인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 갔고 완벽한 춤을 위해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 했다. 그 결과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발레리나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속의 거센 풍랑을 못 본 채 하고 평정을 가장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붉은 피가 도는 뜨거운 심장대신 차가운 이성만 점점 비대해지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학창시절 자신의 욕망에 처음으로 눈 뜨게 해 준 스승과 친구마저 배신한 그녀는 자식에게 조차도 나눠줄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내면이 점점 피폐해져갔다.


그녀의 춤은 기계처럼 완벽에 가까웠지만 누군가가 뜬 주물속에 갇힌 듯 답답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억압된 욕망은 기괴한 괴물처럼 부풀려졌고 공연이 끝나고 거울 앞에 서면 약함을 감추기 위해 위장한 가면 뒤에 가려진 한없이 초라한 민낯이 드러났다. 작은 손놀림에도 힘없이 바스라지고 마는 곤충의 마른 사체처럼 허망하고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삶에 방해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배신할 정도로 독하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제인이 실상 가장 미워했던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한 번도 자신의 민낯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제인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마, 오직 너의 춤을 춰”라고 했던 마리교수의 가르침은 억지로 누군가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갇혀있던 밀실에서 나와 자신의 삶 속으로 용기있게 걸어가라는 안타까운 외침이었다.


소설 <불온한 숨>은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진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돌보지 않는 삶에 대한 경고이다. 페르소나가 삶의 대부분을 침범하게 되며 ‘자아’를 기반으로 한 내면세계와 소통이 어려워진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면 소설 속 제인이 그랬듯이 인간은 더 극심한 소외와 직면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는 건 상상이상의 고통임을 소설은 보여주었다. 진짜로 돌봐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안위일 것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림자와 페르소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때 그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외적인 이미지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디서부터가 가면이고 어디서부터가 맨 얼굴인지 스스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통과 갈등을 잊기 위해 쓴 가면이 맨 얼굴을 잊어 버리게 만들어선 안 된다. 삶이 비록 연극일지라도, 그 연극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아닌가. 팽창한 페르소나에서 내가 몰랐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것은 진정한 자기 이해의 길이고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페르소나를 벗고 당당하게 민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가면무도회에 빠져 지내다보면 어느새 연극은 끝나고 무대엔 공허만이 남는다.


‘나만의 숨’을 온전히 쉴 수 있을 때 ‘진짜 나’로 살 수 있음을 소설, <불온한 숨> 이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