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라고 생각해요?

-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저기, 당신은 왜라고 생각해요?”

-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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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담백한 수채화였다면 소설은 한 편의 간절한 시였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유미코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환상의 빛>은 믿고 보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로 먼저 접했다. 아련한 흑백의 화면 속에 남편을 잃은 아내, 유미코의 상실감과 그 ‘이유 없음’으로 고통 받던 그녀의 모습이 담담히 펼쳐졌다. 평론가 이동진의 말대로 영화 장면 장면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원작이 궁금해졌다.


‘미야모토 테루’의 원작 <환상의 빛>은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상실과 이별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한다. 소설은 죽은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다. 수취인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데서, 아내의 간절한 질문에 세상을 떠난 남편은 어떤 답도 줄 수 없다는 데서 애잔하고 쓸쓸하다.


주인공 유미코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집을 나선 것을 말리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할머니가 행방불명 되었다는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후 20대가 된 그녀는 소꼽친구와 결혼해 석 달 된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유미코는 남편이 자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철길 선로를 따라 걷다가 오는 기차를 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돈 문제도, 여자 문제도 없었다. 아무런 단서도 남겨 놓지 않은 채 남편은 유미코 곁을 떠났다. 이후 유미코는 재혼을 해서 그곳을 떠난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과 아이 둘을 키우며 소소한 행복 속으로 돌아오지만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남편의 죽음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재혼한 남편과 아이들의 웃음 소리 속에서도 남편의 죽음이 그녀를 찾아왔다.


“전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레일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게 돼요... 저기, 당신은 왜라고 생각해요?” 답 없는 질문이 그녀를 괴롭혔다.


누군가가 자살을 하면 상처와 고통은 온전히 남겨진 자의 몫이 된다. 죽음을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겠지” “괜히 자살을 했겠어?”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인생의 불가해함 속에 빠진 유미코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를 잔인하게 마주하게 한다.


남편을 보낸 ‘유미코’ 가 삶을 향해 던졌을 수많은 질문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그녀가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쓴다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 그녀는 위태로운 삶을 간신히 삶을 버텨온 건 아니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그녀는 쓰면서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죽고 싶어서 삶의 종착역을 향해 뛰어들 수 도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진실만이 그녀 앞에 당도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었다. 살가운 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자식으로 여태껏 살아왔지만 꿈 속에서 나는 너무나 절박했다. 엄마가 더 이상 옆에 없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고 꿈이 깨고 나서도 깊은 상실감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직은 상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 않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어디선가 한 존재가 태어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또 어디에서는 한 존재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삶과 죽음은 극단에서 마주하는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순환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영화와 소설은 터널 속 어둠과 터널 바깥의 빛이 공존하듯 삶과 죽음이 지척에 있을 수 있다는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해 준다.


소설도, 영화도 삶의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주인공을 그리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여백을 만들어 내고 마음의 귀로 그 여백을 경청하게 한다. 남겨진 사람의 고통에 대해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게 해 준다.


답장을 받을 수 없었던 유미코의 편지처럼 삶은 답 없는 질문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간절히 질문할 때만이 생의 비밀이 그 흐린 빛이나마 보여주는 건 아닐까? <환상의 빛>이 던진 질문속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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