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자본>
“마르크스의 눈이 특별한 것은 그가 평범한 것에 놀랐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특별한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을 때 정작 마르크스는 평범한 것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끌리는 물고기가 정작 가장 흔한 물에 대해서는 맹목이듯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맹목입니다. 상품을 다루면서도 상품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를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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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자본>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눈이 특별한 것은 그가 평범한 것에 놀랐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특별한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을 때 정작 마르크스는 평범한 것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끌리는 물고기가 정작 가장 흔한 물에 대해서는 맹목이듯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맹목입니다. 상품을 다루면서도 상품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를 모릅니다”라고 서문을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자들을 비판한 지점은 바로 ‘눈’이었다.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눈, 눈 앞에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에 대해서 신랄하게 꼬집었다. ‘상품’ 속에 내재된 ‘인간들 간의 관계’를 ‘사물들 간의 관계’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고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물을 당연시 여기듯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형태, 즉 자본주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수한 형태인지,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고, 정상적인 것의 기괴함을 보는 눈이 있어야 자기 시대를 비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역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시대의 독특함도 이해가 된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비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타도하고 극복하려는 시도이기 전에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생각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인다. ‘고통스럽지만 진짜 삶’과 ‘고통 없는 가짜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통 없는 편안한 삶 대신 고통스럽지만 ‘진짜 삶’ 즉 ‘진실’과 직면하고자 했다. 네오의 선택이 보여주듯 고통 없고 할 일 없는 세계가 구원이 아니고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구원으로 조금씩 다가설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실상은 아주 이상한 것이었고 내 고통과도 무관하지 않았음을 마르크스는 일깨워 주려 했다.
<자본> 속을 관통하는 마르크스를 따라가다 보면 <자본>이 경제를 다룬 저서이기 이전에 ‘주권’이라 ‘권력’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예리한 통찰을 제공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종교와 심리학에 관해서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마르크스는 장애인 문제를 예로 들면서 ‘관계의 성격’을 ‘사물의 성격’으로 착각하는 물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애차별적 사회에서는 장애를 어떤 인간의 본래적 성질로 바라보기 때문에 장애를 ‘지녔기에’ 장애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 능력에 대한 사회문화적 편견과 거기에 입각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이 ‘어떤 인간’을 장애인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인종주의도 마찬가지다. 유색인이 유색인이 되는 것은 ‘백인과의 관계’ 속에서이다. 어떤 사람의 피부색이 문제가 되고 눈길이 가는 것은 ‘사회적 관계’의 문제이다. 누군가를 ‘유색인’으로 규정할 때 그 ‘유색 성’은 해당 ‘인간’의 성격이라기보다 해당 ‘사회’의 성격이다. 인종을 통해 작동하는 권력, 즉 인종주의가 피부색으로 ‘현상’ 하는 것이다. 관계를 사물로 착각하게 하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사물들 사이의 관계로 보이게 하는 자본주의는 그래서 전형적인 물신주의 사회임을 보여주었다.
자본은 한때는 ‘불온한 책’이었고 지금은 ‘오래된 책’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여기 지금에서 우리 사회를 읽는 유효한 책이라 생각되었다. 우리 시대를 얼마나 ‘낯설게’ 볼 수 있는가, 얼마나 ‘깨어있는가’에 대한 반성이 시대를 읽는 ‘눈’을 갖게 해 준다고 마르크스는 간절히, 반복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