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맴돌던 얼굴

이은선 <유빙의 숲>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5년 전 봄, 시퍼런 바닷물에 생때같은 아이들을 묻었고 세상은 들끓었다. 생과 사가 한순간에 엇갈린 참담한 현실 속에서 부모들은 오열했고 살아 있는 자들은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렸다.

수시로 흘러내리는 눈물로 붉어진 눈시울과 차마 뉴스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자주 외면했던 참담한 시간의 터널을 나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암담한 시간 속을 무기력하게 지나던 어느 날, 나른한 봄빛을 등에 업고 퇴근하던 중이었다. 무심히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임재범의 <얼굴>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이얀 그 때 꿈을


풀잎에 인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노래 가사가 임재범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실려 터져 나오는 절규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이 터졌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아이들의 햇살 같은 '얼굴'이 하나 둘 떠 다녔다.


이은선 소설집 <유빙의 숲>에는 저마다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세월호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귤 목> 은 세월호 사건으로 손자를 잃은 기구한 운명에 던져진 한 남자의 독백이다.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은 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물음을 평생 간직한 채 두 아이를 홀로 키웠다.


"나는 누구에게 말해버릴 수도 없고 말을 한다 하더라도 평생 해결되지 않는 그 생각들만 껴안고 살았어"라는 남자의 말속에는 홀로 남겨진 남자의 외로움과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남자의 독백은 삶의 진실 한 조각을 보여주었다.


'청귤같이 파란 애들을 삼켜서 저리 푸른가. 저 물빛은 누구의 진물인가' 손주의 여정을 따라 바닷길을 더듬은 남자는 무심한 물빛 앞에서 진저리 친다. 간신히 덮어두었던 상처가, 간신히 벼텨왔던 시간이 손자의 죽음으로 인해 나락 같은 삶으로 다시 그를 떠밀었다.


표제작 이기도 한 <유빙의 숲>에는 불치의 유전병에 걸린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는 할아버지가 과거에 저지른 죄의 대가를 자신이 대신 받고 있다고 믿는다. 병의 원인이 윗대에 있다고 믿는 사실은 세월호의 비극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부패'와 '비리'가 썩은 물처럼 고여있던 어른들의 세상에서 연약한 아이들의 세계는 결코 보호받을 수 없었다. 속수무책 내던져진 아이들은 시퍼런 물속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며 죽어갔다.


거대한 세월호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대책 없이 침몰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 역시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의 정확한 은유였다. '국가' 나 '민족'이라는 당위적 명제 앞에서 개인은 언제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시간을 우리 모두는 견뎌왔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언제나 옳았고 수많은 개인의 삶은 종이인형처럼 쉽게 짓밟혔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고통에는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인간이란 종의 한심한 한계이다. '이제는 그만!' '지겹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면서 위로랍시고 던진다. 타인의 절망과 고통보다는 내 마음의 불편함에서 서둘러 벗어나려는 성급함과 옹졸함이다. 사람이 이토록 잔인하다. 당신이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니까 누가 더 아픈지 따지지 말자고 하는 사람은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고 타인의 진실에 섬세하게 다 가려는 노력을 포기한 사람이다.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위로할 수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어디에서나 나쁜 어른이 되지 않는 게 당면과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삶의 미세한 균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고통을 개별화해서 삶의 진실 한 조각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간신의 타인의 삶 속으로 건너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소설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신형철의 말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