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마르크스의 편을 든 고병권

고병권 <다시 자본을 읽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한 사상가가 세상에 온다는 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이 오는 것이고 그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과 다짐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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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 가득한 대학교정도 함께 떠 오를 것이다.

영화 <1987> 속 인물들이 겪었던 사건은 내가 지나온 역사 속 시간의 한 지점 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영화 속 사람들과 내 삶은 무척이나 달랐다. 젊은 학생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울 때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도서관, 혹은 내 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떠 오르는 첫사랑 생각에 빠져 낭만적인(?) 대학시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농촌 봉사활동을 주말농장 체험쯤으로 생각하고 친구 따라 강남 간 대책 없는 학생이기도 했다. 농활 현장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고된 노동에 혼쭐이 나서 그 날 이후로 시골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깨끗하게 접어 버렸다. 말 그대로 철부지 어린아이였다. 내 앞가림 조차 제대로 못 해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던 날 들 속에서 타인의 상처나 아픔을 돌아볼 여유나 섬세함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나와는 기질적으로 다른 인간들도 분명 존재했다.


불의를 봐도 잘 참았던 나와는 다르게 불의에 민감한 촉수를 가진 일부 학생들은 은밀한 동아리 구석방에서 마르크스를 읽었고, 자본을 읽으며 서서히 사회의 모순에 눈을 떠 갔다. 그렇게 그들은 너도 나도 마르크스 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젊은 그들이 '자본'을 제대로 읽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알튀세르는 말했다. "우리는 , <자본>을 거의 1세기 동안 읽어왔지만, 다시 읽어야 한다. 열 번씩 다시 읽어야 한다,,,"라고. 하물며 우리나라에 <자본>의 최초 번역본이 출간된 게 1987년의 일이니 30년 남짓의 시간일 뿐이다. 방대한 분량과 난해함으로 악명 높은 <자본>은 난공불략의 성이었고 나 역시 몇 번 시도를 해 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는 채무감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지만 섣불리 손이 닿지 않는 신비로운 여인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철학자 고병권이 쓴 <자본> 시리즈를 접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총 12권 중 첫 번째 책이라 도입에 불과했지만 <자본>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워밍업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자본>은 난해함 때문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죽하면 마르크스는 자신은 마르크스 주의자가 아니라고 말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저자는 <자본>이 흥미로웠던 지점을 문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시각이라고 했다. <자본>의 시작은 상품이 가득 쌓여 있는 시장에서 시작한다.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손해보지 않는 등가교환을 원칙으로 한다. 서로 필요해서, 자유롭게,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평등한 교환이다.


마르크스의 눈에 머문 곳은 거래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대부분은 천 원 내고 천 원짜리 물건을 손에 쥐게 되니 서로의 이익이 부합해서 거래가 끝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거래가 끝난 후 무두질을 기다리는 소처럼 쭈뼛쭈뼛 따라가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따라간다. 공장 노동자였다. 생존이 걸린 자와 그 생존을 움켜 쥔 자 사이의 거래는 합법의 토대 외에 세워진 약탈의 다름이 아니었다. 노동력을 판다는 것, 자본주의 생산양식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고 마르크스는 화려한 조명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눈물과 한숨을 명확하게 읽어내는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디에도 불법은 없었다. 노동자의 불운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태생적인 한계였고 아버지의 불운은 곧 아들의 불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뜻했다. 무수한 잉여가치가 쌓여가는 동안 무수한 잉여 인간도 함께 낳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는 고발한다.


고병권은 한 사상가가 세상에 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 한 사상가가 세상에 온다는 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이 오는 것이고 그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과 다짐이 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인식의 시작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대놓고 노동자의 편을 든 마르크스와 대놓고 마르크스의 편을 든 고병권의 <자본>이 손짓하는 매혹 속으로 이제 긴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