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이제 진짜 '공주' 처럼 살고 있을까?

김훈, <연필로 쓰기>

병수는 똥칠갑이 되어서 아버지 옆에서 울었다. 밥을 먹고 눈 똥을 치워서 또 밥을 먹어야 하니까. 밥이 웬수고 똥이 웬수였다. 그날은 내 소년시절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이 슬프다.

- <연필로 쓰기>, 김훈. -


집집마다 쌓인 똥을 사람이 다니면서 직접 퍼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병수는 작가의 친구였다. 병수 아버지는 똥 푸는 일로 밥을 먹었고 작가는 소년시절, 이 일과 관련한 슬픈 기억 한 조각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 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한 두 명씩 고아들이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자식 건사하기 힘든 부모들이 많았던 탓인지 동네마다 보육원이 있었고 이곳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쉼터였다.


우리 반에도 보육원이 집인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은 공주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애가 딱해 보였는지 나는 공주를 자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같이 밥을 먹었고 학용품을 나눠주었다. 내 방에서 함께 소꿉놀이도 했다. 소풍날 엄마를 졸라 도시락을 두 개 쌌다. 하나는 공주 몫이었다. 공주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내가 다가가면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공주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그 아이는 외톨이였다. 공주의 외로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일까? 그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건 아마도 안타까움 내지는 연민이었을 것이다.


학년이 바뀌고 공주는 다른 반이 되었다. 내 기억에서 공주는 그렇게 잊혀졌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읽다가 어린시절이 떠 올랐고 오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한 친구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공주는 이제는 진짜 ‘공주’처럼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