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별을 향해 걸어 가는 것이다

- 정여울 <빈센트, 나의 빈센트> -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나는 빈센트의 그림을 만나면서 내 불안에 종지부를 찍었다.

- 정여울, <빈센트, 나의 빈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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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진작에 사 놓고도 읽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우연히 본 <밤의 카페테라스>가 가슴속에 강한 여운을 남겼고 그림을 그린 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빈센트 반 고흐였다. 빈센트를 향한 내 사랑의 시작이었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영혼의 편지>는 그림이 아닌 글을 통해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세상의 냉대, 가족에게 조차도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그림을 그려야 했던 빈센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먹먹한 슬픔을 주었다.


빈센트의 그림과 책을 접하면서 점점 더 그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급기야 모조품이 아닌 진짜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마침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고 프랑스로 일정을 잡았다. 파리와 아를이 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결정되었다. 파리는 오르세 미술관 방문을 위해서였고 아를은 빈센트가 고갱과 헤어진 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동안 머물렀던 생레미 요양원이 보고 싶어서였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가 된 론강과 나를 강렬하게 매료시켰던 <밤의 카페테라스>의 배경이 된 노란 집도 아를을 여행지로 택한 이유였다.


초등학교 이후로 1등의 기억이 희미한데 새벽같이 도착한 덕분에 오르세 미술관에 1등으로 입성했다. 그의 ‘진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열망 덕분이었다.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과 빈센트가 사모했던 밀레의 그림을 지나 드디어 그의 작품 앞에 섰다.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자화상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실제 그림 앞에 서니 지금껏 내가 봐 왔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눈빛부터 달랐다. 형형한 눈빛이 나를 쏘아보듯 강렬했다. 마치 그림이 살아서 말을 거는 것처럼 생생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꺼지지 않는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한순간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거장의 고독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리를 뜰 수 없어 한동안 자화상 앞에서 머물렀다. 지금도 파리를 떠올리면 빈센트의 자화상이 전경으로 떠오르고 센 강과 에펠탑은 배경으로만 남아 있다.


이후 남프랑스 아를을 향해 출발했다. 파리와 달리 기후가 따뜻하고 지중해의 햇살이 눈부신 곳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걸어서 빈센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생레미 요양원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빈센트의 그림이 실사로 펼쳐졌다. 하지만 겨울이라 그림 속과 달리 정원에는 꽃이 없었다. 인적조차 드문 요양원 뜰은 그의 삶처럼 쓸쓸했다. 고갱과의 결별 후 귀를 자르고 입원한 요양원에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끝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그는 고갱마저 돌아서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귀를 자른 것은 더 이상 소통이 힘든 세상에 대한 빈센트 만의 항변은 아니었을까? 뜰 을 거닐며 빈센트의 숨결을 느끼려 애쓰는 동안 여행자의 가슴에도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론강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강은 생각보다 컸고 주변에는 빈센트의 그림이 점점이 놓여 있었다. 이젤을 펼쳐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림을 그렸을 빈센트를 상상했다. ‘산다는 것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 했던 빈센트는 끝내 자신의 별에 가닿을 수 없었다.


정여울 작가의 <빈센트, 나의 빈센트>는 고흐 덕후인 그녀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간 10여 년간의 기록이다. 작가와 동일한 감정의 파장 내에 있을 때의 행복감은 따뜻한 위로를 전해 주었고 몰랐던 작품세계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욕망이 나를 괴롭혔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가셰 박사의 정원이 있는 오베르쉬르우아즈, 빈센트의 생가가 있는 네덜란드 준데르트, <감자 먹는 사람들>의 배경이 된 네덜란드 누에넨, 빈센트가 광부의 삶을 체험한 벨기에의 몽스로 당장이라도 날아가고픈 욕망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반쯤 읽다 결국 책을 덮었다.


내가 좋아하는 빈센트의 초기작 중에는 <슬픔>과 <구두> 가 있다. 거리의 여인을 그린 <슬픔> 은 얼굴 표정 하나 없이도 슬픔의 깊은 우물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나신의 아름다움이라든가, 균형과 비율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그림 속 여인의 나체는 초라했다. 늘어진 젖가슴과 드러난 주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는 한참 멀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답지 않은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정여울은 <슬픔> 이 아름다운 이유가 ‘타인의 슬픔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빛’ 때문이라고 했다. 빈센트가 표현한 여인의 모습 속에는 가난과 불행, 온갖 상처로 얼룩진 상처 받은 영혼이 무릎에 깊이 고개를 묻은 채 흐느끼고 있다. 관능적인 대상으로 여성을 ‘대상화’ 시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었던 것에 반해 빈센트는 여성의 외형을 보는 대신 인간으로서 느끼는 내면의 고통에 집중했다.


슬픔.png


또 다른 초기작 <구두>는 낡고 더러운 구두 한 쌍이 전부인 그림이다. 구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뼈마디가 굵고 투박한 노동자의 손과 오랜 노동에 그을린 검고 퍼석한 피부, 초라한 입성의 한 남자가 떠오른다. 소중한 한 끼를 위해 기꺼이 고된 노동에 몸을 맡기는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일 것이다. 벗어놓은 구두 한 켤레 속에는 누군가의 인생이 통째로 압축되어 있는 듯 생생했고 당장이라도 주인이 성큼성큼 걸어와 구두를 신고 걸어 나갈 것만 같았다. 내가 빈센트를 사랑하는 이유는 꿈틀거리는 붓놀림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연민,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구두.jpg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작가와 함께 한 여정 속에서 고흐를 느끼고 예술혼을 경험한 시간은 몸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고 한 그의 바람대로 빈센트의 작품은 내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빈센트였지만 그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있다.


유한한 인간인 빈센트는 무한한 예술의 세계에서 결국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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