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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by 배아리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눈이 오는 걸 보고 '하얀 바람이 불어요'라는 서정적인 표현을 하는 나를 보며, 우리 부모님은 그 나이대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야 그 재능이 언어 쪽으로만 치우친 거란 걸 깨달았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글을 썼다. 그림은 아무리 그려도 상 한 번 타기가 어려웠는데, 글은 썼다 하면 대상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칭찬이 좋아서 계속 글을 썼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무리한 다작을 해서인지 이내 소재거리가 떨어졌다. 그 시절 창작의 고통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실제로 고통스러운 창작의 시간을 보냈으나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악한 어린 시절의 내가 창작의 고통을 처음부터 비켜갔던 것인지 이제 와서 알 수는 없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동시집을 베껴서 노트에 적고 있었다는 것이다. 뭐 그걸 이용해서 상을 타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부모님께 내가 쓴 것처럼 보여드리고 칭찬받고 뿌듯해하기가 전부였다. 요즘 말로 '필사'라는 걸 한 것이다. 그것도 꽤나 꾸준히.


어릴 적 방대한 양의 필사를 한 효과는 학창 시절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읽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모든 과목은 국어를 기반으로 한다. 어떤 과목이든 쓱 보면 지문이 한눈에 찍히니 공부한 것에 비해 성적은 늘 잘 나왔다. 비록 수능에서는 삐끗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졸업을 했고, 졸업 전에 무사히 취직도 했다. 감사할 일이다.


그 후로 눈 한 번 깜빡하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회사에서 구박만 받던 막내에서 어느덧 어엿한 팀장이 되어있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적당히 인정받고 있어 더 이상 나를 증명할 것도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프랑스 요리 중에 개구리를 따듯한 물에서 아주 천천히 온도를 높여가며 익혀 먹는 요리가 있다던데, 내가 바로 그 개구리같이 따분하게 익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떤 사건이 터졌고 나는 누구도 나를 붙잡지 못할 그 사건을 방패 삼아 퇴사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그저 표면장력을 버텨내던 잔을 넘치게 한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이다.


회사를 안 가니 시간적 여유가 생겨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여러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고 명상을 하며 차분히 나에게 질문을 던져서 얻어낸 결론은 이거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 문장은 너무도 거창하게 들려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해 온 가치인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취향을 견고하게 다듬고 사유하는 삶.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겪는 감정, 시행착오, 장점 등을 미숙하게나마 글로써 세상에 내보이는 것. 그 글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글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 아닐까.


브런치는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을 믿는다고 했다.

이하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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