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번째 생일의 일기.
난 이제 완전히 새로 태어났어.
소년 만화의 절정에서나 볼 법한 이 문장을 저는 종종 옛 애인에게 선언하듯 말하곤 했습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프락사스가 된 것만큼이나 장엄하게요. 저는 이 말을 무려 프랑스 파리에서도 되뇌었습니다. 촌스러운 관광객에 걸맞게 한참이나 쳐다보던 2월의 화이트 에펠을 보고, 증기 기관차처럼 감탄인지 입김인지 모를 것들을 뱉어내며 작게 읊조렸죠. “어제의 나는 죽었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거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제가 참 안타깝습니다. 왜냐고요? 마법 소녀가 외치는 듯한 상큼한 호기로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으니까요. 토하듯 저 말을 배설했던 건 시궁창에 빠져 처절하게 외우는 기도문과 다름 없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죠. 사실은 단 하나도 변한 게 없으면서 왜 자꾸만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해댔을까요? 답은 하나뿐입니다. 그때의 내가 밉고 지워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내 주변은 모두 괜찮은데 나만 어딘가 껄끄러운 존재였던 거예요. 나만 새로 태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던 그 마음! 스스로 이방인이 되길 자처하던 난삽한 번민이 스물 하고도 조금 더,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좀먹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생일에는 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지금보다 어리고 어릴 때에 전 생일 날의 예닐곱 시만 되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점철된 이 삶을, 생일이라는 게 또 다른 고민을 야기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마치 내게 생일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속삭이는… …
이제는 만 나이로 계산해도 이십대 초반이라고 우기기 힘든 문턱을 넘어섰기 때문일까요? 이제 전 세수를 해도 뺨이 따갑지 않고, 셔츠 단추를 한 번에 다 잠가도 숨이 차지 않습니다. 아침 식사로 자갈을 먹지도, 몸에서 빠져나간 눈물만큼의 술을 마시지도 않습니다.
대신 평소에 하지 않을 일들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마음의 창을 내어 매캐한 방을 환기해야 했거든요. 명확한 목표 없이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엔 ‘사야 할 것’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음반 가게로 향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겨 조금은 고적한 풍경의 지하상가 어딘가에 위치한 음반 가게였는데요. 무거운 가방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두고 30분이 넘게 CD 코너를 배회했습니다. 처음 보는 가수들의 이름을 작게 발음해 보기도 했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을 먹을 때 전신의 감각을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맛을 찾으려 꼭꼭 씹어 삼킨 과정이었습니다. 마침내 고른 것은 하루키 소설에서나 보던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재즈 앨범과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사운드트랙이었습니다.
‘궁금한 거 있어요?’
음반 가게 사장님은 능숙하게 사장님만큼이나 세월이 흐른 것으로 보이는 가죽 다이어리에 수기로 판매 명세를 기록하시며 옅은 미소를 띠며 제게 물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아니오, 괜찮습니다, 잘 봤습니다, 하고 그 자리를 피하려 부리나케 도망갔겠지만… … 용기 내어 물었습니다.
‘국내 인디 음반은 앞에 있는 게 전부죠?’
‘네에, 그렇지요. 찾는 게 있어요?’
‘9와 숫자들이요. 검정치마는 있던데요.’
사장님은 투박하고 주름이 많은 손으로 흰색인지 상아색인지 모를 삼보컴퓨터의 키보드를 재촉했습니다. 재고를 검색하는 것이었을테죠. 그 순간 제게는 그 사장님이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의 출중한 피아니스트 같았습니다. [9와 숫자들], [9와숫자들] - 이렇게 두 번을 검색한 사장님은 눈썹으로 팔(八)자를 그리며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앨범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이 임무였거든요.
다음은 십오분을 걸어 미리 찾아둔 카페에 왔습니다. 딸기, 수박, 뭐 이런 이름의 필터 커피만 있고 에스프레소 기계는 없는 곳. 원두를 짜내어 갓 내린 진한 아메리카노를 늘 찾았지만, 오늘은 생일이라는 명목으로 과감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행보는 따로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는다고?]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S에게 팬케이크를 먹는다며 보낸 사진에 대한 답장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름에 S와 함께 초콜릿 빙수를 먹으러 갔을 때 저는 딱 한 입만 먹고 스푼을 내려둔 전적이 있습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미각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을 때가 아니라면 단 걸 웬만큼 먹지 않는 사람인데 말이죠. 고작 오늘이 생일이라는 이유로 ‘팬케이크 먹기’를 거룩한 의식처럼 치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 그마저도 반은 남겼지만, 내 의지로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니까요.
숙제처럼 절반을 먹어치운 팬케이크를 커트러리와 함께 저 멀리 치워두고는 구매한 재즈 시디를 가져온 워크맨으로 들었습니다. 카페 인테리어의 중심이었던 월넛 우드의 바 테이블과 퍽 잘 어울려서 괜스레 기분도 좋았습니다. 필터 커피는 싱겁고, 읽던 시집은 여전히 어렵고, 생일이 끝나가고 있었지만요. ‘그’ 파리에서 함께 굴러다녔던 더비 슈즈를 신고 1만보를 걸은 하루였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보다 짐이 늘어났지만, 어딘가 고여 있을 눈물이 빠져나가지 않았지만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다음 주면 그 사장님은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짧은 대화를 하면서, 답지 않게 메이플 시럽을 세 바퀴 뿌린 팬케이크 절반을 삼키면서, 여름 끝 토마토 줄기 같은 향의 필터 커피를 마시면서… … 어쩌면 나도 모르게 탈각의 순간을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 대한 불신감은 팽배하겠지만, 그날 본 소마이 신지의 3점짜리 영화 속 청소년들처럼 태풍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 있을 날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만. 이제는 생일날 우는 것 대신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9월 惡일이 아닌 9월 悟일로 만드는 것. 그러니까 겁먹지 않고 불가해의 영역에 투신하는 것. 어떻습니까? 이제는 정말 외쳐도 될 것 같습니다.
야호! 난 이제 완전히 새로 태어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