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세상엔
콧물보다 맛있는 게 더 많단다

by minmin





아침에 일어나니 아이의 코가 꽉 막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아빠아, 자ㄹ잔니이?" 어제까지만 해도 코감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아이는 맑은 코를 주룩 흘렸다. 추운 날도 아니고 봄날처럼 따뜻한 겨울에, 아니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 맞는 건가. 여하튼 여전히 영하의 끈을 놓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날씨 사이, 드물게 맞은 영상의 따뜻함 속에서도 아이의 콧농은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불을 덮고 자지 않는 아이에게 밤이 추웠던 것일까, 의사가 돌팔이인가, 어린이집 아이들이 더 심한 감기를 가졌나, 콧물 하나로 주변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앨런 머스크가 위성 12,000개를 쏘아 올리겠다는 계획을 듣고 있었던 때에도 그럼 다른 나라가 위성을 쏠 때 걸리적대지 않을까, 안 그래도 위성 때문에 우주 쓰레기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1,2000개라니, 라며 원대한 걱정을 했었다. 내 앞날에 대한 걱정만 해도 머릿속이 꽉 차 있을 텐데, 미래지향적 걱정과 일상적 걱정이 계속 알을 까대는 걸 보니 아직 뇌 속 저장공간이 충분한가 보다. 아니면 나이 사십에도 시냅스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거나.



세상에는 어떤 일도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다. 언제나 걱정이 동반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그럼 누군가 이렇게 받아친다. "그게 문제야. 지금 따뜻하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란 이야기야." 지구온난화를 들먹일 생각일 것이다. 그냥 좋다는 데 동의해주면 안 되는 건가, 좋은 날씨에 감사하며 일광욕을 즐기면 안 되는 건가. 우리는 이런 연상법 내지는 대화법을 배운 적이 없다. 배경지식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교육자들은 인지하고 있을까. 아이는 분명 '콧물이 나오네, 그럼 닦아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너무 많이 나와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훌쩍 마셔버릴 것이고, 그 모습을 본 부모는 '마시면 안 돼'라고 이야기하며 축농증을 걱정할 게 분명하다. 어른의 대화는 걱정에서 파생된다. 그냥 그렇구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꼭 그렇게 지식과 연결 지어야 했을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들아, 세상엔 콧물보다 맛있는 게 더 많단다. 우리 다른 거 먹자. 뵈프 부르기뇽 먹어볼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