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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Nov 15. 2021

K방역, K콘텐츠에 이은 K공부

대한민국 모든 K의 반격, 그 중에서도 K공부

50대에 시작한 박사 공부

지난 9월부터 드디어 박사 과정이 시작되었다. 

최근 부상하는 빅데이터, IT와 관광산업을 통섭으로 엮기 위해 

2020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스마트관광원>이다. 

BK21로도 지정되어 나름 전망이 있는, 

미래지향적 카테고리로 인식되어 젊은 친구들과 입학 경쟁률도 높았다.

연식은 좀 오래되었지만 꽤나 길었던 기획, 분석 그리고 마케팅 경력을 인정받아서인지, 

다행히 입학을 허가 받았다. 


업무과 병행할 수 있을지?
앞으로 만약 업무를 관두고 공부만 한다면
혹시 생계가 해결될 방법이 있을지? 

여러가지 복잡한 걱정과 기대 속에서 시작했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라 선택할 수 있는 온라인 수업이 꽤 있어서, 그건 내게는 다행이었다. 

과감하게 4개의 과목을 신청하고,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하면서 첫 학기를 맞았다. 



가장 두려웠던 통계 수업

가장 무섭고 걱정되었던 전공필수 ‘통계’과목은 역시 진입장벽이 높았다. 

실습용 SPSS를 깔고, 직접 데이터를 돌려가면서 진행하는 수업. 처음에는 매우 헤맸다. 

버튼 하나하나의 기능을 새로 배우고 익숙해져야 하는지라 총기가 떨어진 이 나이에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녹화 강의의 강점을 십분 활용했다. 

한번 보고, 돌려보고 또 보고, 며칠 지나 잊어버릴만 하면 또 돌려봤다. 

중간고사를 보고 나니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하면 이것도 되긴 하겠구나. 불가능하진 않구나 하고.


감동적인 수업도 있었다. 

‘사회조사연구방법’이라는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었는데, 실제 논문을 쓰면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생생한 수업이었다. 저절로 라떼 타령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그냥 교과서 같은 책 한권을 따라 목차대로 수업이 진행되게 마련이었는데, 이 수업은 담당 교수님이 실제 다수의 세계적 논문을 쓴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현장감 있는 수업을 해 주셨다. 수업 내용이 알차다는 건,, 학생 입장에서는 따라가려면 엄청 노력을 해야 된다는 의미다.

실제 구글 스칼러로 검색해 보면
이 분야 논문 인용 지수로 거의 탑에 들어가는 교수님의 실전 눈높이 강의다.
 
와우.
우리 나라의 연구, 공부, 논문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됐구나

스마트 관광이라는 분야가 IT와 연계되면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영역이라, 서구 학계와 거의 같은 시점에 시작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얻은 거다. 

알다시피 호텔관광학이라는 영역은 미국, 스위스 같은 선구자들이 미리 많은 연구를 해서 기본 개념들을 이미 갖춘 상황이라 다른 국가들은 그 기반에서 시작하다 보니 늘 후학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스마트 관광 분야는 좀 다르다. 

오히려 한국에서 주도권을 가지면서 기존 미국 및 유럽 학계와 주도적으로 콜라보해가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의 주도로 글로벌 융합되는 K공부

또 하나, 보람 있고 놀라운 수업은 ‘글로벌 융합세미나’라는 과목이다. 

온라인 줌 수업체제를 십분 활용해, 매주 금요일 오전에 이 분야 국내외 석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과거 같았으면 직접 초청해서 강의 한번 들으려면 비행기 값에 체제비용까지 엄청난 경비가 들었겠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줌을 켜고 생각을 나누면 된다. 대략 한시간 반 정도의 강의에, 나머지 반 시간 동안에는 질의, 응답 시간.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독일, 홍콩,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스마트관광분야 연구자들의 최근 연구 사례를 듣는 것 자체도 매우 좋은 기회이고, 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의 다양한 코멘트와 질문, 이에 성심 성의껏 답변해 주는 태도를 보는 것도 좋다. 그들 국가에서도 최근 K-방역과 K콘텐츠의 파워를 알고 있으므로 우리를 존중해 주고, 특히 이 분야 K-연구의 실적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국가별 연구 내용이나 연구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독일 연구자들은 개념에 강하다. 모든 것을 도식화한다. 진지하다. 데이터에 강하다. 

홍콩 연구자는 매우 실용적이다. 일상 데이터 활용을 매우 자유롭게, 다양하게 시도한다. 

일본 연구자는 매우 겸손하다. 스마트 관광 분야에서 일본이 조금 뒤쳐졌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연구도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미국 연구자들은 단단하다. 이론이면 이론, 데이터면 데이터. 빈틈이 별로 없고, 자부심도 대단하다. 전통 관광과 데이터 분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한국 연구자들의 특징도 분명하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다. 새로운 분야를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뭐랄까. 의욕에 차 있다. 수줍게 내 놓는 연구들의 성과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관점들이 많다. 

역시, ‘오징어 게임’을 내놓는 국가답게 독창적이다.


의욕 넘치는 다양한 국가의 K학생들

‘지오투어리즘’이라는 수업도 듣는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미래에 물려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 여행’의 일환인 지질,지형 관광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주는 과목이다. 최근 몇 주 간은 각자 관심있는 지질 공원을 골라, 10분 정도 길이로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모두에게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듣다 보니, 60여명의 수강생을 다 알 수는 없었는데, 발표 동영상을 통해 하나하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중 20여 명의 학생들이 외국인이었다. 

중국, 인도네시아, 크로아티아, 우즈베키스탄 등 국가도 다양하다. 이들이 각자 본인 나라의 지질공원에 대해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하는데,, 자료 조사의 depth나 그들의 한국어 실력에, 깜짝 놀랐다. 수업 내용을 참 꼼꼼하게도 듣고, 어떻게든 발표를 잘 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중국에 있는 한국관광공사에서 근무한다는 한 학생은 ‘관광업’ 분야에서 앞서가는 한국의 노하우를 익혀서 중국에서 잘 활용하고 싶다고 너무나 유려한 한국어로 이야기해서 감동을 주었다. 아, 한국이 이제 몇몇 연구 분야에서는 아시아권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앞서나가고 있구나. 아마도 스마트 관광 분야뿐 아니라 문화콘텐츠, 데이터기술 같은 영역에서도 한국이 나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 같다.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는 살아있는 공부

옛날, 90년대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는 틀이 죄다 서양의 프레임이었던 점이었다. 교수님들은 각자 본인이 공부하신 나라, 대학의 학파를 따라, “내가 XX론 공부를 전공했으니 그 틀에 맞춰 사회를 해석한다”라는 식이었고, 자신의 연구나 관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분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들 졸업 후 공부를 하려면 미국을 가냐, 프랑스를 가냐에 대해 고민하지,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건 많은 경우 고려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적어도 여기 <스마트 관광원>의 분위기는 다르다. 

굳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지 않아도, 다양한 외국의 논문과 사례들을 참조하면서, 

여기 계시는 많은 훌륭한 교수님과 선배들과 협업해 가면서 얼마든 좋은 연구를 할 기회가 널려 있다. 


연구주제들도 매우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고민들이다. 

에어비앤비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해야 밀레니얼을 유인할지, 

VR/AR같은 기법을 향후 관광 콘텐츠에 어떻게 녹일지, 관광을 복지 관점에서 어떻게 포용할지, 

미래지향적 스마트관광도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지. 

지방 도시 활성화를 위한 관광산업의 역할은 무엇일지.

연구방법 역시 매우 선진적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서 다양한 기관들과 협업을 진행한다.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다양한 정성적, 통계적 방법들이 새롭게 도입된다. 

좋은 논문들이 너무 많이 진행되고 있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이미 실린 논문들도 너무 많다. 


그런데 심각한 부작용

물론 부작용도 있다. 왠만한 연구 플랜으로는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미 누군가가 했단다. 

새로운 방법을 더 고민해 보란다. 이 정도 방법론으로는 학술지에 실릴 수 없단다. 

그래. 

역시, 이 정도 경쟁은 해야 한국, 한국인이지 

어디 가나 잘 하는 사람은 넘쳐나고, 경쟁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그래도, 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게 한국인이지. 


요즘 젠지답게 영어도 잘 하고, 질문도 잘 하고, 연구도 정말 열심히 해내는 대학원 원우들을 보면, 뭔가 같이 고민하고 경쟁하다 보면 방법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뭉개뭉개 솟아오른다. 일단 나이브하게 낙관해 보자. 그리고 뭐, 좀 연식은 돼지만 나도 막상 논문 써야하는 기한이 닥치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우리 대한민국 신세대 문화의 원조, X세대가 아닌가
K 공부 대열에 슬쩍 낀 X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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