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줄서기부터 오이 나눔까지: 한국의 '빛'

홉스테드 문화차원이론 관점

by 설부인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풍경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난다. 고대 중국의 『주역』에 등장하는 '관광(觀光)'의 어원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빛을 본다(觀國之光)"는 의미이다. 나는 이 '빛'이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미지의 문화를 빛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때로는 그 빛이 신선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당혹감과 혼란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를 우리는 '문화 충격(Culture Shock)'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한국에 왔을 때 카페에 핸드폰과 컴퓨터를 놓아둔 채 화장실을 간다든지, 지하철에서 줄을 잘 선다든지, 등산 갔는데 오이를 나눠준다는지 하는 행동에서 놀라움을 느낀다는 유튜브 동영상들이 있다. 최근 한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놀라움 일색이라 즐겁기는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해외에 나갔을 때는 부정적인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왜 우리는 이런 '문화 충격'을 경험하고, 어떻게 하면 낯선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 문화의 숨겨진 지도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이론이 있다.




1.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 문화 충격의 열쇠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게르트 홉스테드는 한 사회의 문화가 그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문화 차원 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을 제시했다. 그는 전 세계 국가의 문화를 6가지 차원으로 분류하여, 국가별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숫자로 보여준다. 이 차원들을 이해하면 우리가 낯선 문화권에서 왜 특정 행동을 하고 특정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할 수 있다.


권력 거리(Power Distance): 사회 내 권력의 불평등을 얼마나 수용하고 기대하는가에 대한 차원이다. 권력 거리가 높은 문화권(예: 한국)에서는 위계질서와 상하 관계를 중시하지만, 낮은 문화권(예: 북유럽)에서는 평등을 강조한다. 왜 어떤 나라에서는 상사에게 쉽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격의 없이 대화하는지 이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Individualism vs. Collectivism): 개인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행동하는가, 혹은 집단에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가에 대한 차원이다. 개인주의가 높으면 개인의 자유와 성취를 중시하고, 집단주의가 높으면 소속 집단의 조화와 충성을 우선시한다. 해외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거나, 반대로 '우리'라는 소속감이 유난히 강한 문화를 접할 때 이 차원이 작용한다.


남성성 vs. 여성성(Masculinity vs. Femininity): 경쟁, 성취, 성공을 중시하는가(남성성), 아니면 협력, 삶의 질, 관계를 중시하는가(여성성)에 대한 차원이다. 겉으로는 치열한 경쟁 사회 같지만, 그 이면에는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도 있다.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얼마나 불편해하고 피하려 하는가에 대한 차원이다. 불확실성 회피가 높으면 명확한 규칙, 규정, 안정성을 선호하고 계획과 준비, 시간 엄수가 중요하다. 반대로 낮은 문화권에서는 유연하고 즉흥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기 지향성 vs. 단기 지향성(Long-Term Orientation vs. Short-Term Orientation): 미래를 준비하고 보상을 지연시키는 장기적 관점을 중시하는가, 아니면 전통과 현재의 가치를 중시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가에 대한 차원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와 '오늘을 즐기자'는 문화의 차이가 여기서 비롯된다.


방종 vs. 절제(Indulgence vs. Restraint): 기본적인 욕구나 즐거움을 얼마나 자유롭게 표출하고 충족시키는가에 대한 차원이다. 방종이 높으면 쾌락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절제가 높으면 사회적 규범에 따라 욕구 충족을 억제하고 책임감과 신중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문화 충격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우리 문화의 점수와 방문하는 국가의 점수가 크게 다를 때 발생한다.




2. 최신 자료로 본 한국 문화의 평가


그렇다면 홉스테드 인사이트(Hofstede Insights)의 최신 업데이트 자료로 본 한국 문화는 어떤 특징을 가질까?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론이 나온 지 50년이 지났고 그간 한국 사회가 급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이 점수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 사회의 문화적 DNA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권력 거리(PDI): 60점 (높음)
한국 사회는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나이, 직급 등에 따른 권위와 존중을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IDV): 18점 (매우 낮음 = 강한 집단주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며,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과 조화를 개인보다 우선시한다.


남성성 vs. 여성성(MAS): 39점 (낮음 = 여성성)
경쟁보다는 관계, 조화, 삶의 질, 구성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는 치열한 경쟁 사회 같지만, 깊은 내면에는 관계와 조화의 가치가 존재한다.)


불확실성 회피(UAI): 85점 (매우 높음)
모호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강한 불안감을 느끼며, 명확한 규칙, 규정, 안정성을 선호한다. 계획과 준비, 시간 엄수가 중요하다.


장기 지향성 vs. 단기 지향성(LTO): 100점 (매우 높음)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와 준비, 절약, 인내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종 vs. 절제(IVR): 29점 (낮음 = 강한 절제)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여 욕구 충족을 억제하고, 책임감과 신중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점수들은 한국 문화가 가진 고유한 DNA를 보여주며,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어떤 부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문화 충격을 받을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고 보면 유교 걸, 유교 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현사회 질서와 기존 문화를 굉장히 중시한다)




3. 외국인이 한국에서 놀라는 장면들: 역지사지로 보는 문화 충격


최근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겪는 '문화 충격'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충격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놀라움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해외에 나갔을 때 '이런 게 다 가능해?' 혹은 '이럴 수가!'라고 놀랄 수 있는 지점들과 연결된다.


지하철의 압도적인 깨끗함과 효율성: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청결도와 정확성, 편리한 시설은 외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이는 매우 높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규칙 준수)'과 강한 '집단주의(공공의 이익 중시)'가 만들어낸 한국 특유의 문화이다. 우리가 해외에서 낡고 지저분하며 연착이 잦은 지하철을 겪으면 느끼는 불편함과 대비된다.

질서 있는 줄 서기 문화: 버스, 상점, 심지어 화장실까지 자연스럽게 줄을 서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풍경이다. 이는 강한 집단주의와 '높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규칙 중시)'이 결합된 결과이다. 외국에서는 줄을 서지 않거나 새치기가 빈번한 곳도 많아 우리가 당황할 수 있다.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돈 통 방치': 무인 가게나 노점에서 돈 통을 그대로 두거나, 식당에서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소지품을 두는 모습은 높은 사회적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풍경이다. 이러한 신뢰는 강한 집단주의와 절제 문화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소지품을 단 1분도 그대로 둘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경계심을 놓지 못할 수 있다.

등산 중 오이 등 나눔 문화: 낯선 등산객에게 거리낌 없이 음식을 건네는 '정(情)' 문화는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는 강한 집단주의와 '관계 중시(여성성)'의 한국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외에서 이처럼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나누는 경우는 흔치 않다.

높은 패션 감각 그러나 무채색만: 전반적으로 세련된 옷차림과 자신을 가꾸는 한국인의 모습도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만, 단 버라이어티 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는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규범 준수와 함께, 집단에 동화되려는 집단주의적 경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을 통해 자신과 타 문화를 이해하면, 낯선 곳에서 겪는 문화 충격을 단순히 불편함이나 당혹감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 다름을 통해 우리 문화의 고유한 '빛'을 새롭게 발견하고, 타 문화의 '빛'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문화는 더 이상 막연한 '다름'이 아니라, 명확한 '지도'가 된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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