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와 경영진의 차이
(“뭐 그렇다고 대단한 흑막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처음으로 광고주 사이드에서 경험해 보니
몰랐던 것이 보여서 신기했다는 말이다.)
회사가 드디어 광고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일단 첫 단계,
간단 RFP (Request For Proposal)를 마음에 둔 대행사에 보내서 참여 의사를 확인하고
다음 단계,
브랜드 과제를 자세하게 기술해서 프로젝트 OT를 해 준다.
마지막 단계,
참여의사를 밝힌 광고대행사들이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와서 순서대로 발표를 하고,
우리는 엄격한(?)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통보를 한다.
과정은 매우 공정했다
발표 순서도 정의롭게 사다리 타기를 했고,
실제 내부 평가도 담당 팀 전체가 평가표에 점수를 매겨서 등수를 냈다.
전략단의 필요성
광고 대행사에 있으면서, 전략파트를 담당하다 보니
맨 앞에서 왜 제작물을 이렇게 풀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지면 제작 쪽에서 앞쪽을 좀 짧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제작물, 크리에이티브라는 암묵적 합의 하에.
하지만, 거꾸로 광고주 쪽에 앉아서 들어 보니
전략이라는 앞 단의 이야기가 그냥 의미 없는 개념 대잔치는 아니었구나,
꽤나 선택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특히, 그냥 제품 광고가 아니고 브랜드 광고성 성격이다 보니,
전략을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결국 제작 아이디어의 깊이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하나 소비자 인터뷰를 따고,
의미 있는 키워드를 선택하고,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그 과정들이
얼마나 제대로인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경영진과 실무의 관점 차이
하지만, 경영진과 실무의 차이도 일부 있었다.
(물론 이건 지금 현재 우리 회사만의 특징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광고 경험이 많지 않은 경영진의 경우에는
광고물의 시안 완성도에 많이 좌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안 동영상 퀄리티나 배경음악 등,
소위 ‘때깔’ 나는 시안이 선택에 영향을 많이 준다.
반면, 광고 제작 경험이 많은 실무의 경우에는
제작물은 나중에 다시 만들어도 된다는 전제 하에,
제대로 된 전략 방향성을 짚고
쓸만한 슬로건이나 키워드 방향을 가져온 쪽을 더 선호하게 된다.
물론, 경영진과 실무가 모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도록
좋은 방향에 좋은 아이디어를 한방에 가지고 오면 퍼펙트이겠지만.
만약 한 번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 의견은 갈릴 수 있다.
실무는 태도와 숨은 노력, 제작의 수정 가능성 중심으로
경영진은 결과물 위주로 본다면,,
광고대행사의 역량은 결국은 종합 예술.
그런 면에서 종합광고대행사가 유리하긴 하구나 하고 실감했다.
특히 브랜드 광고의 경우에는.
공교롭게도 같은 점수
전체 대행사 중 두 개의 대행사가 같이 최고점을 받았다.
점수로 결정이 안 된다면,, 이제는 회의다.
3차에 걸친 회의를 거쳐 결국 하나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 지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대행사가 그렇게 몇 주간 고민해서 가져온 결과물인데
광고주가 그 정도 노력도 안 한다면 말이 안 되지. 하고
다시 착하게 마음을 먹었다.
대행사 출신답게
애써 의미를 찾자면,
그 과정에서 경영진들과 브랜드 방향성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되어,
좋은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며칠 간의 지난한 회의 끝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 전략 방향과 가장 잘 맞는
슬로건과 키워드를 가지고 온 대행사를 선정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해 준 다른 대행사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대행사 출신이라 그런지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동시에 옛날 나를, 우리 회사를 떨어뜨려 엄청 원망했던 광고주들 생각도 났다.
그들도 나름 엄청 고민했고 엄청 미안해했겠거니 하고.
약간은 뒤늦은 위안을 얻었달까.
아무튼 광고주 입장에서 대행사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도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지난한 과정이 남았겠지.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준비해서, 연말에는 좋은 결과물을 얻어보자!
으쌰 으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