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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Sep 27. 2022

경고와 징계 사이

회사생활, 결국 태도가 경쟁력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돈 사고가.

쿠폰 발행을 하던 팀에서 실수로 횟수 설정을 넣지 않아,

무제한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와 버렸다.

놓친 사이 한 달간 누적된 사용금액이 꽤나 많은 액수였다.


주말 사이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담당자가 

월요일 아침 얼굴이 하얘져서 출근했다.


당장 추가 사용을 막고,

그간 사용내역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피해 금액을 정확히 계산하고,

경위서를 썼다.


그리고 화요일, 

주간 업무 회의를 위해 오신 대표님들께 

이 일이 보고되었고,

전체 회의 후 별도의 회의가 잡혔다.


대표님들, 나의 빌런 본부장, 그리고 나.

일종의 징계 위원회가 열린 셈이었다.

오, 이 착잡하고 싸한 분위기



1. 사죄의 시간 _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꽤 긴 시간 회사 생활했지만 금전적 문제가 일어날 부서에 근무하지 않은 관계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손해 본 것이 내 돈이다 생각해 보면 

대표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돈이 수익으로 나오려면 매출 얼마가 필요한 거야 ,,,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윙윙 돌아갔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평생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는 지독한 클리셰가 

방언처럼 입에서 툭 터져 나왔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절실해지니까 
이런 촌스러운 말이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나왔다


직접 담당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차피 관리의 책임이라는 것이 있으니.


착잡하고 어두운 대화가 몇 차례 더 오고 간 후,

담당자들 징계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자 내 긴장감은 최고에 달했다.

사죄의 순간에는 무조건 착 엎드려 있었지만,

그래도 조직의 장으로서 내 할 말은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2. 항의의 시간 _ 징계는 아니지 않나요


실수이고, 처음이라는 점을 참작해 달라,

결국 계속 같이 갈 사람이라면 조직 로열티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뭐 그런 기조의 이야기였다.


사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 엄청난 복지제도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닌지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니겠다는 대단한 각오와 로열티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리하게 징계를 해서 

그 직원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순간, 

결국 도움이 된 것은

그 해당 직원들의 평소 태도였다.


만약 경영진들이 보기에 

평소 근태나 일에 대한 몰입도에서 미흡하다 생각했으면

사람을 잃을 각오를 하더라도

경고가 아닌 징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이 돈을 잃을지 언정 

직원들의 마음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날 회의의 최종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며칠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시스템적, 프로세스적 개선 방안을 확실하게 마련하는 후속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3. 회고의 시간 _ 교훈이 생겼어요


돌이키기도 싫은 

그 착잡하고 민망하고 모골이 송연했던 순간이 지나고 보니,

어쨌거나 교훈이 생겼다.


해당 업무에 대한 직접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돈이 개입되고 숫자가 나오는 문서에는 

나도, 담당자도 눈에 불을 켜고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특히나 경영진 보고 문서를 작성하고

실제 결재 시스템을 타는 순간에는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수업료를 치렀다고나 할까.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다.


경고일 때 잘 하자! 징계는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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