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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union Mar 20. 2023

째깍째깍 시한폭탄

어렸을 적 본 가족오락관이란 프로그램에서 시한폭탄을 돌려가며 퀴즈를 풀던 코너가 있었다. 출연자들은 자기 차례에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빠르게 정답을 말하면서 폭탄을 돌렸는데, 펑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날리는 폭탄에도 다들 무서워하며 떠넘기기에 바빴다. 게임 속 가짜 폭탄이 터지면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현실에서 터지는 폭탄은 분노를 일으킨다.        

        

가족오락관과 같은 폭탄 옮기는 게임을 진행한 KBS 해피투게더


대부분 회사가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단체 역시 데드라인이 정해진 일들이 많다. 활동가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맡은 업무를 진행하는데,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바쁘게 일을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갑자기 생기는 뜻밖의 업무는 우선순위를 바꿔놓고, 미뤄지는 결제는 진행을 어렵게 한다.       

             

급하게 정해진 다음 주 토론회는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어 담당자가 되고, A 보고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A와 관련된 모든 업무의 책임자가 된다. 1주일 전에 올린 상장이 6~7번의 검토 요청에도 시상식 당일 오전에 완료되고, 토론회나 창립기념식 자료집이 시작 2~3시간 전에 겨우 도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시한폭탄처럼 예고 없이 떨어지는 일들은 마감에 가까워질수록 활동가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 뿐, 정신없이 일하는 활동가들로 다행히 폭발한 적은 없다.                                    

하지만 활동가의 손을 떠난 일들은 곧바로 터진 폭탄이 되어서 돌아온다. 예를 들면, 인권위(1기 노조위원장이 노조 활동으로 인한 차별을 인권위에 진정한 사건)에서 14일 내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자료가 두 달이 넘도록 제출되지 않다가 담당 조사관이 화난 어조로 단체 대표의 연락처를 묻고 나자, 당일에 제출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안 한 건 사측인데, Notice를 안 해 준 노조가 과실이 있다고요?        


물론 터진 폭탄은 더 있다. 연례행사인 총회를 위해 구성된 총회준비위원회(이하 총준위)에 활동가 대표가 총준위 위원이 아닌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단체협상이 통과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사측은 총준위 내규 개정(노조 대표 1인이 총준위 위원으로 참석)을 하지 않았다. 총준위가 시작되고 나서야 사측은 문제를 깨달았고, 활동가 대표는 정식 위원이 아닌 참관인이 되어버렸다. 노사협의사항에 따라 내규 개정을 해야 하는 것은 사측이지만, 사측은 항의하는 활동가 대표에게 언성을 높였고, 과실을 묻자 공격적으로 말한다고 화를 냈다. 심지어 미리 말을 안 한 노조에도 과실이 있다며 억지를 부렸는데,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미안해야 할 사람이 왜 미리 안 알려주지 않았냐고 화는 내는 모습이라니..적반하장이나 다름없다.                               



또 다른 폭탄은 ‘노동이사제’ 문제다. 작년에 힘겹게 통과시킨 단협안에는 '조합이 지명한 1인을 노동이사로 임명'한다고 되어있으며, 보궐노동이사의 경우 선출이 아닌 추인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총회 선출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다(우리 단체의 이사 임기는 2년이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이사' 선출이 아닌 '노동이사 후보' 선출이라며 총회에서 다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노동조합의 추천이 있는 경우 노동이사를 둘 수 있다’, ‘소정의 노동이사의 선출절차는 별도의 노사 합의로 정하며, 총회는 해당 절차에 따라 결정된 노동이사를 추인한다’는 안을 정관에 추가하는 것으로 수정 제안을 했었다. 그러나 노조의 제안을 본 사용자 A는 자신의 검토를 안 거쳤다는 이유로 회의 자료에서 삭제하고, 노동이사도 총회에서 선출하는 기존의 사측의 이사 선출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가 함께 만든 단협안에 빈칸이 발견돼 서로의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주어진다면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노동이사를 시행하기로 확정했으니, 노동이사가 선출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답이 아닐까? 굳이 빙빙 도는 방식을 선택해 그 의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다각도 소통을 한 자 누구인가?      

노조는 회의를 통해 추인이 아니더라도 올해 노동이사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측의 이사선출방식에 동의해 한발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 A는 이미 이사회 의결로 총회 소집 공고 안건이 정해졌다며 노동 이사 안건을 이사들에게 추가로 의견을 묻고 서면 의결을 재요청하는 것이 싫다고 거절했다. 반복해서 임시 이사회를 여는 게 면구하다는 이유지만, 필요하면 몇 번이고 수정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사측은 최후가 돼서야 활동가 전체에 상황을 설명하며 노동이사 선출을 총준위 안건에 추가하겠다고 했고,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사측은 이 지난한 과정을 노조와 다각도로 소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리 노사 협의 자리가 있었다면 이렇게 오해가 깊어지고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의 과정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에 요청해 4개월째 제자리인 2023 임금 협상이다. 한차례 교섭이 있었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교섭에 적극적이지 않다. 재정위기를 증명하겠다던 1월 수지계산은 3월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고, 임금협상 자체를 잊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의 시한폭탄 안에는 꽃가루가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싫다.      

폭탄이 터질지 말지, 또 얼마나 큰 여파를 줄지 모두의 노력에 달려있다.      


물론, 노조는 늘 폭탄이 터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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