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까지 오게 한 것
나는 지금 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과를 진학하여 영화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중3으로 우선 거슬러 가야 한다.
중3 때 나는 공부 밖에 모르는 잼민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진 않았다.
그때 차라리 신명 나게 노는 게 나았을 정도로.
하얀 두부 같은 뱃살에 까만 배랫나무가 징그롭게 피어오르던 때였다.
그즈음에 내가 좋아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영화였다. 그땐, 한창 반전 영화에 빠져있었다.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센스, 쏘우, 아이덴티티, 디 아더스, 메멘토, 데이비드 게일, 파이트 클럽,
중간중간에 19세 영화도 섞여 있지만 눈감아 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았지만 그렇다고 꿈이 영화감독은 아니었다.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마산이라는 도시에서 영화감독을 꿈꾸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꿈과 관련된 일화 중에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꿈을 적어서 내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몽골에서 양을 치면서 양을 심는 게 꿈이라고 한 적도 있다.
선생님에게 맞을 뻔한 건 덤이다.
우연히 티비에서 본 유유자적 양을 치는 양치기를 보고 부러웠나 보다.
그냥 유유히
때가 되면 양을 몰고,
때가 되면 털을 깎아 시장에 팔고,
때가 되면 양고기도 팔고(그 당시에 양고기는 먹어보지도 않았지만서도),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때가 되면 애도 낳고,
때가 되면 죽고.
그냥. 뭐라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날 중3 여름이었다.
같은 반 친구 하나가 학생회장이었는데, 그 친구가 축제 스텝을 도와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인싸였던 친구가 아싸인 나에게 부탁을 한 것에 내심 기뻐하며 흔쾌히 수락하였다.
친구가 부탁한 축제 스탭은 그렇게 비중이 있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저 무대 뒤에서 다음에 출연자들을 줄 세우고 차례차례 다음 무대로 내보내는 역할이었다. 분명 쉽긴 하지만, 축제를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불공평한 허드렛일뿐이었다.
허나, 그 일은 내 인생 처음으로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
이 축제에 내가 공헌했다는 것.
남들은 알지 못하는 무대 뒤를 내가 목격했다는 것.
그런 점이 공부 밖에 몰랐던 잼민이를 흥분시키게 만들었다.
그렇게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그 보람 때문에 <'영화 스탭'을 해보고 싶다>란 꿈을 꾸었고,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영화과를 지망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행히 서울권 영화과에 턱걸이로 붙었고, 학교에서 영화도 찍어보고, 영화 현장에도 가보고, 지금은 영상일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이 행복하냐고? 물론 행복하다. 과거에 일도 없이 빈 천장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때에 비하면, 바빠서 정신없는 것이 훨씬 났다. 그러다가도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문득 '지금은 왜 일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시 중3 시절의 무대 뒤편으로 돌아가곤 한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일할 것일까. 지금은 '보람'때문에 일하고 있을까?
보람 조금
재미 조금
돈 조금 많이
음... 난 뭐 때문에 일하고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내가 양치기를 꿈꾸던 것처럼
때가 되면 아이를 낳고
때가 되면 집을 사고
때가 되면 차를 사고
때가 되면 늙어서
때가 되면 죽는
막연히 뭐라도 되지 않을까 꿈만 꾸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앞으로 나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게 될지 이제 정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