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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이 Jun 26. 2023

4. 나 자신을 아라보자

성인 ADHD검사를 보러 가보았다. 

오래간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아마 한 달 만인듯하다. 


그동안 꽤 바빴다. 열심히 살려고 애썼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근하여 일을 하고, 미래 계획을 짜고, 집에 돌아와서는 개인적인 작업이나 공부도 하였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지쳐버렸다.


 나는 영상 제작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상일은 수정요청이 많이 온다. 그리고 특히나 이번에 맡은 일은 특히나 까탈스러웠다. 매일 연락이 와서는 수정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도 나름 항의를 해보았다. 하지만 뻔뻔한 그들의 태도에 지쳐서 곧이곧대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정을 하다 보면 또 늦게까지 일하게 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체력은 0에 가깝다. 자기 계발이나 나를 위한 작업은 하나도 못하고 씻고 정리하고 잠만 자게 된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반복된 생활에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돈을 벌자니 시간이 없고, 시간을 내자니 돈이 없었다. 열심히 살고 싶고 잘해보고 싶었는데, 뭐든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머리는 늘 혼란스러웠고, 머릿속은 불만과 화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욕이 반자동으로 튀어나왔고, 그냥 길을 걷다가도 화가 갑자기 나서 혼잣말로 욕을 하는 게 다반사였다. 마치 만화경 안에서 빛이 반사하는 것처럼 생각은 생각을 물고 계속 생각을 물다 보니 원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도 없고, 그저 불만과 화가 머릿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어랏? 나 이 정도로 화낼 필요는 없잖아?"라고 나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멈추지는 않았다.


 내 속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즈음, 우연히 '성인 ADHD'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성인 ADHD 증상에는 크게 집중력 부족, 과잉 집중, 무질서, 시간 관리의 어려움, 건망증, 충동성, 감정 문제, 부정적인 자기상 등이 있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나와 겹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에는 여러 성격장애증상과 겹치기도 하기에 이러한 증상이 있다고 성인 ADHD라고 보기엔 확실치 않다. 게다가 증상이 나와 부합하지 않는 것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성인 ADHD는 잠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되려 잠이 적은 편에 속한다. 물론 과거에 우울증에 시달릴 때는 잠을 많이 자긴 했지만 그건 우울증 때문이지 성인 ADHD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술, 담배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뿐더러(몸이 안 받아줘서 많이 먹지 않는다.) 담배는 과거에는 폈지만 결혼하면서 끊었다(담배... 맛있긴 했다). 찾아낸 정보에 의하면 성인 ADHD는 필히 의사와 상담과 전문 성인 ADHD검사로 진단하여야 하고 성인 ADHD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때문에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가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애들이랑은 조금 다르긴 했다고 한다. 내가 어린아이 치고 뛰어놀지를 않으니 친척 어르신은 내가 자폐이지 않나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치원 시절부터 나는 왕따를 당하였다. 유치원생이 무슨 왕따냐고 할 수 있지만 나의 기억으로 어린 나는 다른 아이와 말을 하거나 노는 일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나를 밀치고, 내 손등을 하도 꼬집어서 손등 전체가 꼬집힌 자국으로 가득 차고, 만들기를 하는 수업시간 때는 날 도와주는 척하면서 일부러 망가트리기도 하고, 깜깜한 방에 가두기도 하고, 하교할 때마다 나를 잡기 위해 쫓아왔기에 나는 늘 도망 다녔다. 그 덕택에 그때는 달리기가 좀 빨랐다. 그리고 자주 맞고 다녀서 코피가 난 채로 집에 오기 일수였기에, 할머니(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지내며 어린 나와 누나를 돌보았다)는 유치원에 등원할 때마다 '맞으면 참지 말고 니도 때리라!'라고 나를 부추겼다. 나는 명량하게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지금까지 누구 하나 때린 적이 없다. 


 왕따는 초등학생까지 이어지다가,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 3학년 즈음되며 여느 또래아이들처럼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중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는 다른 사람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였다.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놀림받기 일쑤였다. 귀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말귀 못 알아먹는 덕에 업무를 하는데에 큰 방해가 되었고, 그것은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업무 이야기를 들을 때, 머릿속으로는 이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수십 번 되새긴다. 하지만 정작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이다.


누군가 '모아이야. 영상 14분 12초부터 15분 16초까지 수정이 되었으니 cg실장님께 전화해서 수정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언제까지 작업가능한지 물어봐'

라고 나에게 지시한다면 나는 그 지시를 듣고 머릿속으로는 

'전화? 내 전화번호~(지누션-전화번호)'

'cg는 뭐의 약자일까?'

'왜 분과 초는 60 단위로 쪼개졌있고 시간은 12시간 단위일까?'

'영상은 단지 이미지의 연속일 뿐인데, 우리는 왜 감동을 받는 걸까?'

'감동이란 것은 무엇이지?'

'감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력이 동반되는 것일까? 만약 상상력이 동반되는 것이라면 동물들은 감동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하다 보면 이미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


 그래도 이곳저곳 부딪히고 욕먹어가면서 극복도 하며 이제 1인분은 하며 먹고살고 있다. 이제 어린 시절처럼 맞고 다니지도 않고, 왕따도 아니다. 20살 때 나의 모습을 알던 사람들은 12년이 지난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다들 사람 됐다고 말을 할 정도로 꽤나 성숙해진 것 같다. 나는 여태 그저 내가 머리가 좀 나쁘거나, 뇌 성장 속도가 남들에 비해 느리지 않나 짐작만 하며 살았다. 하지만 성인 ADHD의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고 내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성인 ADHD이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으로 가서 성인 ADHD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두 가지 검사를 하였다. CAT(종합주의력 검사)와 뇌파 검사를 하였다. 검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 굳이 서술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며칠뒤 성인 ADHD확진을 받았다.


 성인 ADHD검사 확진받기 전부터 스스로 성인 ADHD라고 확신을 했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확진을 받았을 때 좀 기뻤다. 이제는 좀 덜 고민하고 쉽게 생각하면서 살고 싶게 되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약을 먹은 지 1주일이 넘어간다. 머릿속이 꽤나 정리된 느낌이다. 과거의 일이 불현듯 떠올라서 감정을 지배하는 일도 줄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쳐 손 쓸 수도 없는 일도 줄어들었다. 생각이 비게 되니 이제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갈 차례이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봐주며 살아야겠다. 이미 지금까지 꽤 잘해왔잖아? 한 개씩 잘해나가 보자고.

 

차일피일 미뤄놓은 브런치 글을 오늘 드디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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