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

이 이야기는 모난 돌의 성장기.

by 지니

나는 예민하다.

기질부터 예민한 사람이다. 어떤 점이 예민하냐고 물어온다면,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태생부터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았다.


남들이랑 다를 것 없지만, 남들이랑 다를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



어릴 적, 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님들이 그랬듯,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기억이 있다.

기억이 모두 나진 않는다. 할머니는 유사 무당으로 방 한편에 법당을 차리고 난 그 법당 서랍 밑에 자주 숨어서 놀았던 기억이 가장 머릿속에 자리 잡아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처음에는 2층 집 주택에서 살았고, 그 집이 모두 우리 집은 아니었다. 2층만 우리 집이었고, 난 그 집에서 구시대 방법으로 할머니가 이를 뽑았었다. 그 시절의 나는 행복했었던 것 같았다. 집 바로 앞이 짜장면 집이어서 그때부터 짜장면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가야 하는 나이부터는 다시 부모님과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주 아팠었던 나는 유치원을 나가는 날보다 집과 병원에 있었던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때부터 허약한 나를 보살피려고 안 먹여본 음식이 없었다. 장어를 통으로 고았던 걸쭉한 즙부터 아토피에 좋다는 달맞이꽃 종자유, 붕어즙, 녹용.

몸이 많이 괜찮아지긴 했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눈에는 살이 통통하게 찌지를 않으니 여전히 말랐다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셨었다.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엄하셨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유해지셨지만 훈육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육체, 언어, 비언어적인 폭력을 행하셨었다.



나의 눈치 보는 습관은 그때쯤부터 생긴 것 같다.

이 눈치 보는 습관은 현재 글을 쓰고 있는 33살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장점과 단점을 가져다주고 있다.


친구들과 집 앞바다를 놀러 갔다가 아빠에게 쿠션으로 뺨을 맞았던 일이 있었다.

아빠에게 쿠션으로 뺨을 맞을 때, 얼굴에 남는 따끔한 통증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부모님이 서로 식칼을 들고 목에 겨누는 싸움 장면, 억울하게 문방구 도둑으로 몰려 엄마에게 종아리 30대를 맞던 일,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밤새 무릎 꿇고 자는 부모님 앞에서 울며 구구단을 외웠던 일, 조금이라도 비린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에게 억지로 해물을 먹게 하며 못 먹으면 밥상을 뒤엎었던 일.


부모님의 눈에 들려고 그때부터 무던히 노력하였다.

둘째 동생이 태어났었다. 자매가 생긴 나는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으레 다른 가족들이 하는 것처럼, 사촌들과 함께 놀러 갔었다는 사실이 사진으로 나마 남아있을 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사촌언니와 오빠의 영향을 받아 게임과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했었다.

MP3에 음악을 다운로드하여 등/하교를 하였으며 친구들과도 파일을 주고받았다.


고등학교 입학 때에는 일명 '돌림판' 정책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엄마와 컴퓨터 앞에서 기쁘게 손뼉 치던 기억이 있다. 무난했었던 고1, 고2 시절을 지나 고3 시절, 나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썼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왔고, 그날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