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 1

이 이야기는 모난 돌의 성장기.

by 지니

시작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바로 아빠에게 반항하지는 않았었다.


수능이 다가올 무렵, 우리 집은 사정이 어려워져서 동네 구옥 빌라로 이사했었다.

구옥 빌라였지만 베란다도 있고, 내 개인 방을 따로 가질 수 있어 오히려 행복했었다.

집 앞에는 시장이 있었고, 놀이터와 슈퍼, 편의점이 있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수능을 치고 난 다음 날, 반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 것인지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지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었다.


그다음 날이었던 것 같다.

정말 집 앞 3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종이가 붙었고, 집 앞이고 주말 낮에만 하는 것이니 아무 걱정 끼치지 않고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수능도 끝났으니, 집 앞에 편의점 주말 낮 아르바이트 구한다던데 하고 싶어."

"안돼. 기지배가 아르바이트는 무슨 아르바이트야. "

"왜? 나 이제 곧 성인이고 집 앞 편의점 낮 아르바이트인데 뭐가 안되는데? 위험하지도 않잖아"


쌍심지를 켠 아빠의 눈과 화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서는 이내 험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기지배가 아빠가 말하면 그냥 네 알았습니다. 하고 말 것이지 말이 많아.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아.


19살, 난 아빠의 말을 처음으로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고성이 오가고 아빠는 분을 못 이겨 나의 뺨과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나도 아빠에게 손을 세우고, 아빠의 팔을 저지하려 했었지만 아직 19살인 나의 힘으로는 아빠를 저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힘과 체격이었다.


아빠의 눈 밑에는 내가 할퀸 상처로 흉이 남았고, 발로 나의 배를 몇 번 걷어찬 아빠는 이내 집을 나갔다.

이 상황을 지켜보았던 엄마는 왜 아빠에게 대드냐며, 아빠 집 나간 거 안 보이냐며 내가 맞은 물리적인 상처와 심리적인 상처는 챙겨주지 않았다.


이틀 뒤, 아빠가 집을 다시 들어오고 나서 아무 일 없던 듯이 집안은 돌아갔다.

아빠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안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 감정이 불안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나마 달라졌던 건, 그 이후 아빠가 아르바이트를 허락해 주었다는 것이다.


엄격하기만 하고, 무서웠던 아빠의 단단한 껍질 중 하나를 억지로 칼을 맞대고 벗겨낸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지금 다시 곱씹어서 생각해 보아도, 변하지 않을 느낌이라 생각한다.


아빠와의 첫 충돌 이후,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과 대표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나의 두 번째 작은 반항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무 직급을 달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고등학교 서기 직급 이후 오랜만에 맡는 직급이었다.


재밌었다.


과 아이들에게 학교 일정, MT 비, 시험 일정 공유.. 알 수 없는 소속감에 마음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과 대표 1학년, 같은 과의 선배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고 - 20살 젊은 간을 보유했었던 - 이내 술이 만취한 상태로 선배의 등에 업혀 집에 귀가하게 되었다.


기억은 나지 않아 동생에게 들은 바로는, 집 앞 문을 열기 전부터 나는 토를 하기 시작했었단다.

문을 열고나서도 신발장에서 토하고, 선배들은 연신 우리 부모님에게 굽신거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였다.

내가 토를 하고 만취한 모습을 아빠는 처음 봐서인지, 자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이니 당황해서인지 아빠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고 한다.


자면서도 토를 하는 바람에 엄마가 옆에서 계속 토하다가 기도가 막힐까 봐 몸을 옆으로 뉘어주고 닦아주고 했었다.


이후 헐크 같은 체력으로 4시간 만에 술이 다 깬 나는, 과 대표끼리의 LT를 가겠다고 짐을 싸서 바로 학교를 갔었다.


선배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LT를 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빠를 마주하게 된다.


"잠시 앉아봐."


아빠의 폭력이 또 나에게 올까 봐 무서운 상태로 앉았던 나는, 이후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술을 가지고 와서 주도를 가르쳐 주겠다며, 앞으로 술을 마시는 나이이지만 예의 있고 절제하면서 마셔야 하니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며 술자리 예의를 가르쳐 주셨다.


휘둥그레졌었다.


웃어른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마시기, 술을 따를 때에는 두 손으로 따르기, 자신의 주량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알고 있기.


아빠는 주도를 가르쳐주며 내가 그때 기절해서 죽는 줄 알았다며 웃으셨었다.


아빠가 주도를 가르쳐 준 그날,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엄격하기만 하던 아빠가 나를 어른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 순간 나는 아빠가 나를 인정해준다고 느꼈고, 그 기분은 오늘날까지도 내 안에 깊이 남아 있다.


이후 대학교 - 성인까지의 생활은 아무 탈 없이 친구들과 외박도 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모님에게 다른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처음 탄 월급으로 맛있는 식사도 대접해 드리는 행복한 시절을 보냈었다.


이 행복감은 서울 상경 후 20대 중반 전까지만이였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던 날들. 그런 날에는 내 마음의 어딘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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