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ME super fuji superia
수동 필름 카메라로 흰둥이를 찍을 땐 무언가에 집중해 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를 공략해야 한다. 하지만 집중한다고 사진의 결과물이 늘 좋은 건 아니다. 집중이 깨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흰둥이가 얌전히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잠깐만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다.
흰둥아, 아 착하지, 착하지..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잠.. ㄲ ㅏ...
그래서 초창기 미슈퍼로 담아낸 흰둥이는 졸고 있거나 누워서 잠이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잠든 강아지를 천사 같다고들 한다.
볼록한 배를 들썩이며 쌔근쌔근 잠든 강아지를 보면 잘 때가 가장 예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귀여움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잠든 강아지의 귀여움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건드리는 순간 천사는 사라질 테니.
잠시 깨워 사진을 찍고 싶어도 통제가 가능한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냥 잠든 흰둥이를 찍고 또 찍을 수밖에는 없었다.
연 하늘빛의 상큼한 꽃과 체리 무늬의 방석은 처음엔 내 것이었다. 마트에서 3900원에 득템 한 가격 대비 고품질을 자랑하는 푹신한 방석을 좋아했던 게 나만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달까.
흰둥이와 방석 뺏기 시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엔 '내려가라' 내 소유임을 명백히 주장했지만 방석의 운명이 그러하듯 방석은 흰둥이의 것이 되고 말았다. 좋은 물건을 알아보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이나 개나 똑같은가 보다.
지금은 빛바랜 방석이 되었지만 여전히 흰둥이 하우스에 잘 깔려 있다. 중간에 솜을 바꿔주긴 했어도 지금까지 흰둥이가 가장 즐겨 쓰는 방석이 되었다. 몇 해 전 반려인들 사이에서 일명 떡실신 방석이라고 유명한 아** 방석을 제일 큰 사이즈로 사 주었지만 흰둥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흰둥이는 침대도 방석도 내것은 좋아하면서 반려견 전용 침대나 방석엔 애착이 없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내 침대가 흰둥이 것이고 내 방석도 흰둥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원하는 물건을 줘 버리면 사진 찍는 일은 한결 수월해진다. 나는 그날 모델료로 저 방석을 흰둥이에게 주었다. 그 덕에 나의 뾰족 궁둥이가 방석이 없어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대신 잘 나온 사진 한 장 건졌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역시 세상엔 공짜란 없는 것이다.
방석을 갖기 위해
기다리라는 말을 엄청 들었어요.
기다려!
하도 많이 들어서
왠지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정말 다리에 쥐도 나고 힘들어서
졸린 척할까 고민도 됐어요.
방석 때문에 겨우 참았어요.
역시 세상엔 공짜는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