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따뜻했던 위로.
프롤로그
한여름 폭염의 기세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문득 지난겨울의 기록적 한파가 연일 뉴스를 장식했던 때가 떠오른다. 당시 나는 잠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입원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밤, 병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이 나에게 두렵고 무섭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한 평도 안 되는 그곳에서 나는 소리 없이 혼자 눈물을 흘렸다. 괜찮다, 괜찮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다독였지만 아파서였을까 마음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가족과 사람들 모두 그리웠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흰둥이였다. 사람이라면 통화라도 할 텐데, 아무리 전화기에 흰둥아~ 흰둥아~ 하고 불러도 들리는 건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10년 넘게 흰둥이와 이렇게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흰둥이를 쓰다듬다 잠들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누구에게 할 수 없는 말들도 묵묵히 들어주고 비밀도 지켜주는 녀석이었는데 옆에 없으니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웃기는 소리 같지만, 흰둥이는 내게 동생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한마디로 소울 메이트 같은 존재다. 내게 흰둥이는 반려견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 집 현관문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슬프거나 감격 같은 어떤 감정의 흐름도 없이 순식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참으려 애를 써봤지만 '엉엉' 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집 안으로 들어서 흰둥이와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울었다.
참을 수도 없었고 참아지지도 않았다.
나를 놓아버리고 그렇게 울어본 적이 또 언제였는지 모를 만큼 한참을 흰둥이 앞에서 울었다.
흰둥이는 덤덤했다. 나와 흰둥이가 뒤바뀐 것처럼.
내가 입원하고 집에 없는 며칠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던 녀석은 의외로 차분히 나를 맞이했다.
많이 아팠어요?
이젠 괜찮아요?
그만 울고 내 등이나 쓰다듬어요, 누나.
하는 듯 내 앞에 앉아 손을 끌어 자신의 등을 쓰다듬게 했다.
잠깐만 나갔다 들어와도 한참만에 만나는 듯 꼬리에 온몸을 흔들며 반기던 녀석이 그날은 그렇게 담담히 나를 반겼다. 상상했던 모습과 정반대였다. 낑낑대고 꼬리에 엉덩이를 흔들고 어쩔 줄 몰라 핥아대고 만져달라 안아달라 떼쓰며 반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정에 주체 못 하는 쪽은 나였다. 작은 개에게 기대어 나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고 흰둥이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내 눈물과 콧물을 따뜻하게 핥아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집에 왔으니까 다 괜찮아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였다.
눈물이 마르고 왜 집에 오지 않았는지 기다렸을 흰둥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진심은 언제나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게 사람대 사람이 아니라도.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위안받는다는 건 조금 다른 감정이다.
사랑은 한점 그늘도 없이 따뜻한 햇볕을 온전히 받고 있는 느낌이라면
위로는 바싹 말라버린 땅에 한줄기 빗방울이 깊고 긴 땅으로 천천히 스미는 것 같다.
흰둥이의 위로가 그랬다.
눈을 맞추고 손을 핥고 눈물을 닦아 주는 것뿐인데, 메말라 있던 마음속 깊이 그 위로가 스며들었다.
말이나 물질이 아닌 온 마음으로 위로해 주던 흰둥이의 모습을 아마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난겨울 거울에 비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내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차디찬 두려움의 한파 속에서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던 흰둥이의 위로, 작은 몸으로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안아주던 위로 덕에 나는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