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이어티(Hangxiety)에 관하여

해장의 기술

by 문샤인

행자이어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생소할 것이다. 숙취(Hangover)와 걱정(Anxiety)가 합쳐진 말이다. 들어본 적은 없어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경험해 본 적은 있을 것이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전날 기억이 흐릿할 때, ‘내가 실수하지는 않았나?’, ‘필름 끊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는 것이다. 행자이어티를 겪을 때는 보통 이러한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첫번째는 불안감이다. 어제 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라도 넋두리 하고싶어 어제 같이 자리한 친구들에게 연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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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떻게 된거야?"

같이 있던 친구도 기억을 못하거나 말해주지 않으면 불안감은 극대화된다.


두번째는 후회감이다. 설령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들어도 근원 없는 후회감이 몰려온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말걸..’ 또는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걸’하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수치심이다. 부끄러운 행동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해진다. 이러한 감정들이 섞여서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행자이어티는 왜 생기는걸까?


도파민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우리 뇌는 도파민을 대량으로 분비한다. 도파민은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술자리를 즐겹게 느끼게 한다. 하지만 다음 날, 과격하게 분비되었던 도파민이 급감하면서 뇌는 일종의 ‘보상 부족’ 상태에 빠진다. 이때, 앞서 언급한 감정들이 나를 삼키게 된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유독 무기력하고, 휴일이라면 종일 숏폼 영상만 보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알코올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도 높인다. 우리 뇌는 도파민 고갈에 코르티솔까지 더해져 몸은 긴장하게 되고, 기억의 공백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채우려 한다. 불확실함 앞에서는 부정적으로 최악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뇌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행자이어티는 여러 방면에서 좋지 않다. 다음 날의 생산성을 현격히 떨어뜨리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발생하지 않게 하거나, 그런 빠져 들었을 때 잘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방법을 정리했다.


사전 예방책(사실 베스트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기분 좋을 정도로 마시는 것이다):

1. 잠들기 전에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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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행자이어티를 겪었더라면, 자기 전에 메모장을 켜서 내일의 힘들어할 나를 위해 메시지를 남겨 보자. 가령 오늘은 실수한 것이 없었고, 집에 무사히 잘 들어왔으니 아침에 안심하고 하루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가 다음 날의 나를 구할 수 있다. 한 줄만이라도 불안을 객관화하고 무의식적 자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2. 술이 깨고 잠자리에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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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도, 취한 채로 잠들면 숙면에 방해가 되고 수면 호르몬과 생체 호르몬이 꼬인다고 한다. 취기가 많이 올라왔을 때 바로 잠자리에 드는 것 보다는 물을 많이 마시거나 음식을 먹은 뒤에 안정된 상태에서 자는 것이 좋다. 술이 깨면 정신도 제자리를 찾게 되므로 다음날의 행자이어티 또한 줄어들 것이다.


사후 대처:

이미 행자이어티에 휩싸였다면 잘 대응하면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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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움직여라

일단 휴대폰을 내려 놓아라. SNS나 숏폼 영상은 무너진 도파민 체계를 악화할 뿐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 크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다 잠이 들어도 좋다. 잠은 우리 뇌를 쉬게 하고 정상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아주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라. 불안감에서 가장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 하나가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물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다. 무력감이 온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양치라도 해라.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움직이다 보면 안 좋은 감정들이 사라질 것이다. 당장 나가서 5분만이라도 좋으니 산책하는 것이 도파민 회복을 촉진한다.


2. ‘뭐 어쩌라고’ 마인드를 가져라

사실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문제가 될 일이라면 이미 당신 눈에 보여야 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눈을 뜨거나, 연락이 쏟아진다거나 등으로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뇌가 만들어낸 가상의 재난 시나리오일 뿐이다.


설령 정말로 실수나 잘못을 했더라도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 자기 삶에 바쁘기 때문이다. 어제의 술자리는 이미 오늘의 일상에 묻혀버린 경우가 대다수이다. 당신이 혼자 이불킥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점심을 먹고 있다.


3. 글을 써라

행자이어티 상태일 때 가장 과열되는 부위는 편도체이다. 편도체는 일종의 ‘위험 감지 센서’ 이다. 글을 쓰면 언어 중추가 활성화되면서 감정적인 예민함이 언어적인 구조화로 옮겨진다. 또한 글쓰기는 문장을 짓는 과정에서 고차원적 사고가 작동하게 되고 전전두엽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이 때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이 진정되고 통제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평소 글을 잘 쓰지 않더라도 메모장을 켜서 아무 말이라도 적다보면 서서히 회복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래서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행자이어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지금 걱정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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