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잡이 직장인

한 손에는 직장을 다른 손에는 글쓰기를

by Yoo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직장인이 지금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유복한 가정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뛰어난 역량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재테크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평범한 직장인은 학교에서 그랬듯이 성실히 직장생활을 할 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개근이 자랑이 되고 개근이 당연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초/중/고 모두 개근을 했다. 이렇게 몸에 밴 성실함은 성실함이 의무가 되지 않는 대학 때도 대학원 때도 작동하였다. 그리고 다시 성실함이 의무가 되는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실함을 갑옷으로 호기심을 무기로 좋은 학점을 받았고 회사에서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모든 것이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잘 흘러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3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7년 차 직장인이었다. 직장에 오기 전까지는 나의 노력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험을 통해 점수로 환산이 되고, 그 노력이 축적되어 이름 있는 학교에 들어가고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비슷했다. 노력은 고과로 환산되고 진급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나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뒤돌아 봤을 때는 내가 찍으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발자국이 촘촘히 그리고 뚜렷이 보였다. 그러나 직장에서 찍은 나의 발자국은 보폭이 너무 커져 마치 수년이상의 시간을 한걸음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마치 학창 시절 나름 많은 계획을 세우고 나름 열심히 보냈지만 뒤돌아보면 뭘 했는지 잘 모르겠는 여름방학을 지낸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듯이 앞으로의 발자국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과거에도 그랬듯 성실하게 찍은 나의 발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그 발자국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에게 미래의 다른 생각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한 직장인을 보며 나도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되고 퇴직 후에는 책도 쓰고 강연도 할 수 있겠다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였다.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이라는 거대한 조류를 헤엄치며 나름 성장하고 앞으로 전진했지만, 그 조류는 나의 발자국을 나도 모르게 지워버렸다.


내가 직장에서 하루하루의 흔적을 꾹꾹 눌러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부터이다. 단순히 직장의 큰 조류에만 몸을 맡기지 않고 조금 더 능동적으로 내가 타고 싶은 작은 조류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리를 뻗어 바닥에 나의 발자국을 글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꾹꾹 눌러썼다. 언젠가는 지워지겠지만 그 흔적이라도 남아 내가 원할 때 찾을 수 있음을 바라면서 찍었다.


이렇게 찍은 발자국이 1,000개의 글로 남았다. 그리고 발자국을 찍을 때 한 고민이 1,000개의 메모로 남았다. 아직도 이렇게 찍은 발자국이 평범한 직장인인 나에게 다른 생각이 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다른 어딘가로 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냥 흘러가지 않고 꾹꾹 찍어 놓은 발걸음이 언젠가는 나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는, 작게는 직장생활에 크게는 나의 인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하나의 뿌리가 되었다.


나처럼 오른손잡이 혹은 왼손잡이인 대부분의 직장인이 글쓰기로 양손을 쓰는 연습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양손잡이가 많이 진 세상이 모든 사람의 일의 과정이 자산이 되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