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두르지 않은 게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구먼.
몇 년 전 친구의 가게에서
일 할 때였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채 오후 장사를 위해
오전에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죠.
그날은 파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맵지 않도록
30분 이상 물에 재워놓고,
깨끗이 닦아 파채 기계에 넣어
파채를 만들고 있었어요.
한참 동안 도마에 칼질을 하던
친구가 건네더군요.
"모아이야!
맨날 누가 해준 음식만 먹을 줄 알았지.
이렇게 앞치마 두르고
이런 일할 거라 생각했겠어."
웃으며 화답했죠.
"그러게 말이다.
먹고살려다 보니 별거 다해보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파를
마트를 다니며 비교하고 구매하러 다녔고,
아내와 장을 보러 가도 각종 야채 가격을 민감하게 둘러본 시기였습니다.
판매하는 음식 중 밀키트
(가정간편식 조리음식) 메뉴도 있었지만,
태어나서 프라이팬에
지지고 볶고 다른 양념을 첨가하면서
요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여전히 요리를 썩 잘하진 못하지만
요리를 대한 반감의 간극을
줄여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얼마 전 글친구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에 대해
오가던 대화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필사하고 독서하는 모습에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아침은 5분 만을 외치던
자신과 싸움을 벌였던 시간이었습니다.
억지로 일어나 겨우겨우
아침을 먹고 출근하기에 급급했죠.
그 당시 막연한 미래에
몸을 던진 거라면,
이제 아침은 미래를 조금씩
그려나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 일이 생겨 새벽같이 일어나 글을 쓰고, 필사를 하며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죠.
톨스토이는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멋진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종종 두려움을 느낍니다.
더욱이 그 두려움은 준비가 없을수록
점점 커지죠.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향키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면 어떨까요?
오히려 가까운 미래는
신나는 여정이 됩니다.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더라도,
생각해 온 밑그림에는
결국 가까워지기 때문이죠.
매일 좋아하는 혹은 좋아하게 될
글과 함께하는 삶을
회사 일과 병행하다 보니
일하는 시간마저 즐거워졌습니다.
방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확실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내 꿈의 목록에는
책, 그리고 글과 함께 하는
삶은 없었습니다.
아침에 오롯이
이것들로 채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느낍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어서
더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