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앞에서 우리는 근시가 될 필요가 있다.
결국 모든 일은 시작해야 끝을 볼 수 있으며,
순간순간 매일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빛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원,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고1까지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험기간 중 하루에
두세 과목을 본다고 하면
한두 과목을 그냥 포기했으니까요.
위기가 사람을 움직였는지
고 2로 올라가며 점차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잡았던 첫 목표가
시험을 포기하는 과목을
줄이는 것이었어요.
공부하는 시간을
하루나 이틀에서
일주일로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생각보다
성적이 조금씩 오르는 게 보이자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2학기 중간고사부터는
2주라는 시간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과목당 한 번 보게 될 것을
두세 번 보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깨달았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성실하게 문을 두드리면 수준급은 되지 못해도
평균 이상은 하겠구나."
(그럼에도 수학은 장시간이 필요한 과목이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야구에서 초반 15 대 0은
대체로 뒤집기 힘든 점수입니다.
초반부터 점수 차이가 벌어지면
지고 있는 팀은 의욕이 떨어지죠.
물론 이기고 있는 팀 역시 방심도 하게 되고요.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중반까지 이렇게
15 대 3,
15 대 7,
15 대 11
점수를 따라잡으면 어떤가요?
거기에 몇 번 공격이 남았다면요.
아마 이러면 지던 팀도 의욕이 생겨
경기를 임할 겁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그래요.
처음부터 차근차근해놓으면,
시험이 있다고 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반길 거예요.
해놓은 것이 있으니 조금만 분발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반대로 해놓은 것이 없으면
시험이 두렵습니다.
산을 오를 때 생각해 보세요.
정상을 보다보며 시작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언제 저기 까기 올라가지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한 걸음씩 앞사람에 뒤꿈치를 보면서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상에 와 있는 걸
알게 됩니다.
"노적성해(露積成海)"
이슬방울이 쌓여 바다를 이룬다 했습니다.
첫 술에 배가 부르기도 어렵다 했습니다.
큰 목표가 있다면
등분을 나누어 부담이 없도록
작게 시작해 보세요.
1년에 100이라는 목표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서 줄여나가고
할 수 있는 최소단위로 만들어 보는 거예요.
6달에 50으로,
1달에 10으로,
1주에 2.5으로,
하루에 0.4으로,
이렇게 목표가 가까이 보일수록
의욕도 생기고 접근하기가 쉽습니다.
그제야 느낍니다.
처음에 벽인 줄 알았는데,
문이었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