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한도가 내 인격은 아니잖아?

by 모아키키 정세복


토요일 오후 2시, 역삼역 스타벅스 창가 자리는 오늘도 세 남자의 한숨 섞인 열기로 가득했다. 민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훈이 그 꼴을 보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며 툭 던졌다.



"야, 민준아. 너 아까부터 뭐 하냐? 엔비디아가 또 네 마음을 긁었어?"



민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아니, 엔비디아는 이제 가족 같아서 그러려니 하는데, 이번 달 카드 결제 예정 금액이 내 월급이랑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하네. 이거 어떡하냐? 리볼빙이라도 해야 하나?"



'리볼빙'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지훈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 미쳤어? 리볼빙이 뭔 줄 알고 손을 대? 그건 미래의 네가 오늘의 너한테 고리로 사채 빌려주는 거야. 이자율이 거의 20%에 육박하는데, 그건 '돌려 막기'가 아니라 '인생 막기'라고!"



옆에서 가죽 자켓 소매를 만지작거리던 재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끼어들었다. "리볼빙? 그거 그냥 이번 달에 좀 덜 내고 다음 달에 내는 거 아냐? 나도 공장 기계 수리비 많이 나왔을 때 몇 번 고민했었는데."



지훈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툭툭 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잘 들어봐. 리볼빙은 이번 달 결제 금액의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넘기는 서비스인데, 그 넘겨진 금액에 붙는 이자가 어마어마해. 한 번 빠지면 카드 한도가 찰 때까지 계속 굴러가는 늪 같은 거라고. 우리 같은 87년생 노총각들이 리볼빙 손대기 시작하면 이 나이에 결혼은커녕 고물상 차리기도 힘들어져."



민준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내 신용 등급은 어떡하냐? 이대로 연체라도 되면 끝장 아냐?"



지훈은 이때다 싶어 오늘의 진짜 경제 팁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지. 너희 신용 등급 올리려면 카드 한도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 무조건 조금 쓰는 게 장땡이 아냐."



재혁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 난 카드 많이 쓰면 신용 등급 떨어지는 줄 알고 일부러 한도 낮춰놨는데?"



"그게 제일 멍청한 짓이야!" 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용 등급을 잘 올리려면 '카드 한도 대비 사용 비율'이 중요해. 보통 전체 한도에서 30% 내외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갚는 게 가장 베스트야. 예를 들어 한도가 1,000만 원이면 매달 300만 원 정도만 쓰라는 거지. 그러면 신용평가사에서는 '아, 이 사람은 돈 쓸 능력이 충분한데도 절제력이 있구나'라고 판단해서 점수를 팍팍 올려준다고."



민준이 자기 휴대폰을 다시 확인하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내 한도가 500만 원인데 이번 달에 450만 원 썼거든. 30%는커녕 90%를 채웠네. 난 이미 '절제력 없는 놈'으로 낙인찍힌 거야?"



지훈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한도를 미리 최대한 높여놔. 한도가 높으면 똑같이 100만 원을 써도 사용 비율이 낮아지니까 신용 등급에 유리하거든. 그리고 리볼빙 같은 건 쳐다보지도 말고, 선결제 시스템을 잘 활용해봐."



재혁이 가죽 자켓 깃을 세우며 일어났다. "야, 어렵다 어려워. 신용 등급 올리는 게 소개팅 성공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네. 그래도 오늘 하나 배웠다. 한도의 30%! 나도 오늘부터 공장 카드 한도 좀 올려달라고 해야겠다."



민준이 노트북을 챙기며 낄낄거렸다. "한도 올린다고 네 가죽 자켓 사는 데 다 쓰지 마라. 그건 신용 등급이 아니라 신용 불량으로 가는 급행열차니까."



세 남자는 스타벅스를 나와 오늘도 어김없이 단골 고깃집으로 향했다. 슬슬 삼겹살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며 민준이 비장하게 외쳤다.



"야! 오늘 고깃값은 내 카드 한도의 딱 30% 안으로 끊자! 1인분씩만 더 먹고 멈추는 거다!"



재혁이 민준의 어깨를 치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우리 우정은 한도 무제한이니까! 오늘 술값은 내가 쏜다. 단, 다음 달에 리볼빙 안 하게 딱 적당히 마시자!"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87년생 동갑내기들의 밤은 깊어갔다. 계좌는 여전히 팍팍하고 신용 등급은 갈 길이 멀었지만, 서로의 한도를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그들은 오늘도 웃으며 삼겹살을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