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돈 빌려주고 월세 받는 남자, 그게 바로 나다

by 모아키키 정세복

토요일 오후, 역삼역 스타벅스의 공기는 여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지훈이 노트북 옆에 ‘내 돈은 소중하니까’라는 문구를 붙여놓자, 민준이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야, 지훈아. 오늘은 또 무슨 공부냐? 나 어제 소개팅 앱 또 까여서 마음이 좀 허하다."



지훈은 비장한 표정으로 화면에 '채권(Bond)'이라는 글자를 띄웠다. 옆에서 가죽 자켓 깃을 세우던 재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아는 척을 했다.



"채권? 그거 영화 보면 무서운 형들이 '종이 내놔!' 할 때 그 종이 아니냐? 우리도 이제 그런 거 하러 다니는 거야?"



지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무식한 87년생들아. 사채 말고 '채권'. 이건 그냥 아주아주 힘센 형들(국가나 대기업)이 쓴 공식 차용증이야. 네가 미국 정부나 삼성전자 같은 부자 형님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꼬박꼬박 이자를 받는 거지."



민준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만, 나도 은행에서 전세 대출 빌려 쓰는 처지인데, 내가 누군가한테 돈을 빌려준다고? 그것도 미국 정부한테?"



지훈은 민준의 가벼운 지갑을 보며 비유를 시작했다. "잘 들어봐. 네가 재혁이한테 돈을 빌려주면 떼먹힐까 봐 불안하지? 근데 미국 정부는 돈을 찍어내는 애들이잖아. 걔네가 떼먹겠냐? 그래서 채권은 주식보다 훨씬 안전해. 한마디로 '망할 리 없는 형들한테 돈 빌려주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사업'인 거야."



재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 그럼 이것도 주식처럼 앱에서 살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요즘은 채권도 주식 종목처럼 이름이 있어."

지훈이 화면에 TLT 같은 영어 이름을 띄웠다.

"자 봐봐, 이게 미국 정부 채권들을 모아놓은 종목이야. 주식 사듯이 이걸 사면 너도 그 즉시 미국 정부의 채권자가 되는 거야. 멋있지 않냐?"



민준이 솔깃한 듯 물었다. "근데 그 이자는 언제 주는데? 1년 기다려야 돼?"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요즘은 배당주처럼 매달 돈을 주는 채권 종목도 많아. 네가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를 마치 '월세'처럼 매달 꼬박꼬박 넣어주는 거지. 주식은 회사가 장사 못 하면 배당을 안 줄 수도 있지만, 채권은 이자를 안 주면 그 나라나 회사가 망했다는 뜻이라 웬만하면 무조건 들어와."



재혁이 가죽 자켓 소매를 걷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처럼 엔비디아에 인생 건 사람들이 이걸 왜 사야 하는 거야?"



지훈이 테이블 위의 빨대를 두 개 들어 설명했다. "주식이 화끈한 공격수라면, 채권은 든든한 골키퍼야. 전쟁 나거나 경제가 박살 나서 주식이 수직 낙하할 때, 사람들은 안전한 채권으로 다 몰려가거든. 그럼 채권 가격이 올라. 네 계좌가 박살 날 때 채권이 방패처럼 막아주는 거지."



민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럼 주식은 '인생 역전'이고, 채권은 '인생 안전벨트'네? 근데 지훈아, 나 전세 이자 내느라 안전벨트 살 돈도 없는데 어쩌냐?"



재혁이 민준의 어깨를 툭 치며 일어났다. "야, 우리 셋 다 장가도 안 갔는데 무슨 걱정이냐! 몸뚱이가 재산이지. 오늘 고깃값은 내가 낼 테니까, 너희는 나한테 '의리'라는 이자를 평생 갚아라."



민준이 재혁의 등을 밀며 낄낄거렸다. "말은 잘해요. 야, 의리 이자 말고 그냥 오늘 삼겹살값 인당 2만 5천 원씩 정확하게 입금해. 그게 우리 우정 등급 유지하는 비결이다."



세 남자는 스타벅스를 나와 오늘도 어김없이 고깃집으로 향했다. 2022년의 하락장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절대 떼먹히지 않을 우정'이라는 가장 든든한 채권을 발행하고 있었다.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민준이 크게 외쳤다.



"야, 미국 국채보다 무서운 게 우리 엄마 잔소리 채권이다! 빨리 먹고 들어가서 자는 척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