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는 비싸도, '한 입 도시락'은 살 수 있잖아?

by 모아키키 정세복

토요일 오후 2시, 역삼역 스타벅스 2층. 지훈은 오늘도 어김없이 '분산투자하지 않는 자, 가난을 독점하리라'는 문구를 노트북 상단에 붙이며 비장하게 마우스를 잡았다. 옆에서 민준은 지난밤 엔비디아 차트를 보느라 잠을 설쳤는지 틔기한 눈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지훈이 화면에 'S&P 500'과 'NASDAQ'이라는 글자를 크게 띄우며 포문을 열었다.



"야, 민준아. 너 엔비디아 하나에 몰빵하고 매일 밤 젠슨 황 형님 기도문 외우느라 힘들지? 그게 바로 개별주의 고통이야. 그래서 오늘은 '지수'와 'ETF'를 좀 배워야 해."



민준은 움찔하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지수? 내 첫사랑 이름인데... 아, 뉴스에서 나스닥이 어쩌구 하는 그 지수 말하는 거지?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엔비디아 주주인데."



재혁이 가죽 자켓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거들었다. "나도 궁금해. 우리 아버지가 폐유 드럼통 500개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건 힘들어도, 그냥 '폐유 전체 시황' 하나만 보면 편하다고 하시거든. 지수라는 게 그런 식의 요약본 같은 거야?"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 남자가 환장하는 '먹을 것'으로 다시 비유를 시작했다.



"잘 들어봐. S&P 500은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우량 기업 500개를 모아놓은 '최고급 호텔 뷔페'라고 보면 돼. 애플이라는 스테이크,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초밥, 아마존이라는 랍스터가 다 들어있지. 근데 민준아, 네가 이 500개 메뉴를 하나씩 다 단품으로 사 먹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겠냐?"



민준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어휴, 스테이크 하나만 해도 비싼데 500개를 어떻게 다 사. 내 월급으로는 택도 없지."



지훈이 바로 그 지점을 짚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나온 게 ETF야. 호텔 주방장이 그 비싼 500개 메뉴를 아주 조금씩, 딱 한 입 크기로만 덜어서 '미니 샘플 도시락'을 만든 거야. 스테이크 한 조각, 초밥 한 알, 랍스터 살점 조금... 이렇게 다 담아서 딱 만 원에 파는 거지. 넌 이 도시락 한 통만 사면, 결과적으로 호텔 뷔페의 500개 메뉴를 전부 조금씩 다 먹어보는 셈이 되는 거야."



민준이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러니까 내가 억만장자가 아니어도, 그 도시락 한 통만 사면 미국 대장주 500개 회사의 주인이 쪼금씩이나마 다 될 수 있다는 거네?"



재혁이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이거 완전 편의점 '모둠 안주 세트'네! 육포도 있고, 치즈도 있고, 견과류도 조금씩 다 들어있어서 그거 하나만 사면 맥주 안주 걱정 끝나는 거잖아!"



지훈이 신이 나서 덧붙였다. "정확해! 나스닥 100 ETF를 사면 성수동 핫플 클럽에 있는 기술주 100개를 모은 도시락을 사는 거고, S&P 500 ETF를 사면 우량주 500개 도시락을 사는 거야. 엔비디아가 좀 상해도 다른 반찬들이 싱싱하면 내 도시락 전체 맛은 크게 안 변하는 거지."



지훈이 "자, 그럼 이제 운용 보수와 괴리율에 대해..."라며 심화 학습을 시도하려 하자, 민준이 조용히 지훈의 마우스를 뺏어 노트북 전원을 눌러버렸다.



"지훈아, 딱 15분 지났다. 도시락 얘기하니까 진짜 배고파서 현기증 나. 나스닥이고 뭐고, 지금 내 위장은 돼지 부위별로 다 모아놓은 '리얼 모둠 도시락'을 원하고 있어."



재혁도 비장하게 가죽 자켓 깃을 세우며 일어났다. "맞아. ETF는 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드는 거야. 오늘 삼겹살, 목살, 가브리살, 항정살, 껍데기까지 딱 5개 종목으로 '역삼동 돼지 지수 500' 도시락 한 판 짜보자!"



세 남자는 스타벅스를 나와 오늘도 어김없이 단골 고깃집으로 향했다. 2022년의 하락장 속에서 계좌는 여전히 파란색이었지만, 모둠 한 판을 시켜놓고 소주를 따르는 그들의 얼굴에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대주주의 미소가 번졌다.



민준이 소주병 라벨을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야, 이것 봐. 이 소주 라벨도 초록색 지수 아니냐?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이 소주병처럼 투명하고 맑게 우상향하겠지? 자, 미니 도시락 주주들의 건승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