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을 거닐던 소년, 상상의 근육을 기르다

by 모아키키 정세복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스스로 다독가라고 자부하지 못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라는 물음에 선뜻 "네"라고 대답하기엔 늘 머뭇거림이 앞섰죠.


하지만 가만히 기억의 갈피를 들춰보니, 학창 시절 제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다만 그 책들이 교과서가 아닌 판타지나 SF 소설이었을 뿐입니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상상력의 세계는 치열하게 탐험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대륙의 역사부터 미지의 대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까지, 아마 백 권 이상의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을 겁니다.



지금도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재미있는 책, 얇은 책부터 읽으라"고 권하곤 하는데, 돌이켜보면 저는 이미 학창 시절에 그 '재미'라는 독서의 본질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에는 그저 즐거움뿐이었지만, 그때 길러진 '상상의 근육'은 성인이 된 지금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문장을 단순한 활자가 아닌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여 머릿속에 그리는 훈련이 완벽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를 보며 풍경을 보고, 인물의 표정을 읽어내는 이 능력은 제가 세상을 이해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독특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읽은 수백 권의 판타지가 지금의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의 독서 덕분에 지금도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행위가 낯설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는 세계는 어쩌면 그때 읽은 수많은 이야기의 조각들로 지어진 성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곳,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저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또 하나의 소설을 완성해가는 여정처럼 느껴집니다.



대단한 고전문학이 아니었어도, 그때 그 판타지 소설들이 저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 길러주었기에 오늘의 작은 성공이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제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어 찾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판타지를 읽은 게 어디에 좋은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더 전문적인 맥락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독서 할때 느끼는 '시각적 상상'은 뇌 과학과 인지 심리학적으로 매우 고등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1. 뇌의 '시각화(Visualization)' 훈련
활자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뇌의 후두엽(시각 처리)과 전두엽(상상 및 실행)을 동시에 활성화합니다.
"문자로 상상이 안 되면 읽기 어렵다"는 증상은 역설적으로 '고도의 몰입형 독서가'라는 증거라고 합니다.
이 훈련이 잘된 사람은 복잡한 기획안이나 설계도를 볼 때 남들보다 입체적으로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2. 가상 시뮬레이션 능력:
소설은 타인의 삶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입니다.
판타지와 SF는 현실의 제약이 없기에 뇌가 훨씬 더 유연하게 사고하도록 돕습니다.
만약 창업을 하고 '내 세계'를 구축하려는 열망은, 어린 시절 수많은 세계관(World-building)을 간접 체험하며 쌓인 '창조적 잠재력'이 발현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3. 어휘의 맥락적 이해 (Implicit Learning):
백 권 이상의 소설을 읽으며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아닌, '상황 속의 의미'를 체득할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전문 서적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