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여둔 드로잉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종이 위에서 선들은 자유롭게 춤을 추지만, 결국 사각형의 경계를 넘지 못합니다.
어느 날 문득, 이 선들이 종이 밖으로 걸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갤러리의 하얀 벽면에 걸려 정적을 지키는 그림보다, 당신의 식탁 위에서 따뜻한 온기를 함께 나누는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진짜 위로는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손끝으로 온기를 느낄 때 찾아오곤 합니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의 풍경보다 내 손에 쥐어진 컵 한 잔이 마음을 더 깊게 녹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당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나의 드로잉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가 쓰는 '세복(勢匐)'이라는 이름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권세 세(勢)와 길 복(匐).
누군가를 누르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기운이며, 동시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匐)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1,250도의 불길을 견디며 도자기에 새겨진 이 선들은, 당신의 일상이 멈추지 않고 건강하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흔적입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무거웠던 당신에게 이 작은 머그잔이 가닿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차를 담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질감이 "수고했어"라는 짧은 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계로 찍어낸 완벽한 직선은 없지만, 대신 그 자리에는 붓이 지나간 자리가 길처럼 남았습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나의 드로잉은 이제 당신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