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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May 09. 2023

사랑의 시작은 사랑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1번지> 유홍준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남도답사 1번지 편의 초판 서문에서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추는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답하는 이 문장은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일 것입니다.


유홍준은 이 문장을 조선시대의 한 문인의 글을 원용하였다고 하였는데,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붙인 발문에서 따온 것 입니다.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것은 한 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


‘안다-사랑한다-보인다’의 순서를 유홍준은 그대로 따오지 않고 ‘사랑한다-안다-보인다’로 굳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떤 의도가 느껴집니다.




물론 단순히 서문에 쓴 바와 같이 ‘안목’에 관한 답을 하다보니 ‘본다’는 결론이 맨 마지막에 위치 했을 것이고, ‘아는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먼저 내세웠으니 그 앞에 ‘안다’가 왔을 것이고, 이후 안다는 것의 비결을 찾아 ‘사랑’을 발견해 낸 단순한 사고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비교하면 꽤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하게됩니다. 우리는 보고-알고-사랑합니다. 첫 눈에 사랑하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역시 눈이 사랑에 앞서는 것을요. 유홍준은 이것을 역행해보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람을 골라내는 좋은 안목을 길러야한다고 여깁니다. 좋은 안목 뒤에 좋은 사랑이 온다고 믿지요. 하지만 사랑의 기술을 말하는 에리히프롬은 사랑은 대상의 문제라는 이 태도를 지적합니다. 사랑할 만한 대상만 있다면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는 그 태도를요.


지극히 조건적이고 거래적인 이 사랑의 방식은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고 받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의식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에리히프롬은 이러한 의식에서 벗어나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자 익혀야할 기술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사랑을 ‘하는’사람이 되자는 것.


이러한 사랑의 기술을 가지고 유홍준으로 다시 되돌아 가면, 이 역행하는 사랑의 고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환류하는지 보게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갖춘 사람이 일으키는 순수한 호기심과 응시. 그것이 사랑을 또 새롭게 변화시키고 풍부한 인격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을요.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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