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여전히 식탁의자에 앉아 한쪽 무릎을 올리고 그 위에 두 손을 포개어 식전 기도를 하시나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제 마음이 어찌나 평화롭던지요. 그러다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 혼자서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만으로도 엄마에 대한 배신 같아서요. 그래도 인생에서 정말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마음속으로 이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모라면 뭐라고 대답해 주실까 상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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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고작 4학년 짜리 어린 남학생이 1년간 저의 심신을 망가뜨렸다는 것부터?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겪어 보지 않는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한 설명은 포기하려고 해요. 학기 말이 되자 저는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 출근 후에도 건물에 들어가지 앉고 주차장에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침대에 푹 쓰러져 오늘 하루도 얼른 끝나길 바라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주차장에 있었지요.
그 아이 때문에 다른 관계도 망쳐버린 것인지, 다른 관계가 망가져서 그 아이를 버틸 힘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 때로는 남편과도 말입니다.
이모가 전해준 사랑이 제게도 있어 우리가 같은 믿음 안에 있습니다. 이모 덕분에 이른 나이에 세상의 비밀을 깨달았지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그저 다 사랑해버리고 싶었습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어찌 믿음이겠습니까.
발을 구르고 눈을 흘기다가 교실을 뛰쳐나가는 그 학생도,
여자친구와의 공연 데이트에 픽업을 요구하는 아버지도,
추석 명절 아침에 작은 어머니보다 늦게 왔다며 그럴 거면 네가 시어머니 하라는 시아버지도,
실은 모두 미워서 오히려 사랑해버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은 다시 웃으며 아무 일 없던 듯이,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들을 여전히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지요. 마음으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모, 제 사랑의 방법이 옳았습니까? 아니면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를 회피한 것일까요? 설마 믿음이 부족했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결국 저는 아팠습니다. 상대를 미워하지 못하고 제 자신을 미워했기 때문이라더군요. 그제야 ‘나부터 살아야지.’ 싶었습니다. 손녀 앞에서 자기 여자친구 욕을 했냐며 서운해하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안정제를 먹고 갔던 시댁은 추석부터 가지 않았고요. 다짜고짜 학교로 쫓아와 선생님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냐며 소리 지르던 학부모의 자녀는 1년 내내 눈 밖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었더니 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약 없이도 잠을 잡니다. 그런데도 아주 마음 깊은 한 구석이 불편합니다. 미운 사람들을 이렇게 계속 외면하고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에 빚진 제가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죄책감에 사무치면서도 먼저 손 내밀 힘은 정말이지 없었습니다. 마음이 종이 한 장보다 얇아져 상대가 한 번만 더 나를 찌른다면 나는 영영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시간을 견뎠습니다.
사실 이번만큼은 먼저 사과를 듣고 싶었습니다. 딱 한 번만 그래준다면 그동안의 모든 상처를 다 잊고 앞으로의 모든 것까지 감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모와 저의 신은 이 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에 목에 있던 혹이 악성종양이라는 것입니다. 아아, 아버지가 이겼습니다. 저는 1년 여만에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걸고 말았습니다. 신호음이 길게 갔습니다. 아무 일 없던 듯이 무던하고 차분하게 '아프시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낮게 깔린 저음으로 무뚝뚝하게 받아치겠지요. 그렇게 어색한 대화가 몇 번 오고 가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피를 나눈 부녀지간 아닙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한두 시간 간격으로 두 번 더 전화를 걸어 기계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아버지 목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혹 심각한 암이어서 죽음을 앞둘지라도 저는 여전히 괘씸하다는 뜻일까요? 마흔을 앞두고도 버려진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 되었으니까요. 아버지를 잃더라도 혹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십시오. 이모라도 제게 그동안 애썼다고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남편은 아버지 화가 풀리실 때까지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서운한 건 다 묻어두고 그저 없던 일처럼 다시 지내는 게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버지를 위해 짧게 기도합니다. 잘 치료할 수 있는 병이게 해 달라고, 어떻게든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시라고. 그리고 저는 그저 되뇝니다. 신은 선하다고, 그가 일하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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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밤이 되면 '드디어 하루가 끝났구나' 싶어 안도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이 좋습니다. 잠이 들면 비로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깊은 밤을 기다리며, 한쪽 무릎을 올리고 그 위에 손을 포갠 이모의 기도 자세를 떠올립니다. 이모의 하나님이 제게도 지혜를 주시기를, 그리하여 결국은 제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버리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씁니다.
2026. 1. 8. ~ 3. 19.
조카 조모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