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모 Jan 02. 2023

우리는 살아있기에 세상 밖을 꿈꾼다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그린에게,



<올해의 친구상> 수상하게 돼서 영광이야. 귀여운 연례행사에 이름을 올릴  있다니 기쁜걸. 너의 2022년은 나로 가득했다고 그랬지?  또한 마찬가지야. 내 시간도 너와의 추억으로 도배되어 있어.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인상 깊게 봤다니 괜히 뿌듯하다. 오랜만에 네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을 추천할 수 있었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윤희에게> 이후로는 타율이 별로 안 좋았는데 말이야. 우리는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영화를 함께 봤어. 나는 이제 셀린 시아마 감독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네가 떠올라. 그리고 <톰보이>나 <워터 릴리스>를 보던 그날의 에피소드가 따라오지.


우리가 잇지와 루스, 니니와 에블린처럼 서로를 보듬어주고 변화시키는 우정을 쌓아나가면 좋겠어. 올해도 잘 지내보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며 맞이하는 새해는 처음이라서 특별한 기분이 드네. 이걸 우리 둘의 새해 풍습으로 정해도 재밌을 것 같아.



삶이 버거워질 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표출해.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활패턴이 망가지는 편이야.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힘들어져.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결심과 시간이 필요하더라고. <처음 만나는 자유>는 이런 혼란스러운 삶을 말하는 영화야.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호한 경계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지.


주인공 수잔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전교생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는데, 딱히 뚜렷한 미래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렇게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아스피린을 먹고 자살기도를 하지. 약에 취한 채 응급실로 실려온 그녀는 얘기해. "가끔은 한 곳에 머무는 게 견디기 어려워요."


자신의 삶을 통제하길 포기한 수잔나는 아주 제멋대로 굴지도, 부모님의 말을 착실히 따르지도 않아. 그저 아스피린 한 통을 삼키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한 거야. 내내 발 묶인 혼돈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결국 신경증과 정신병의 경계에 있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돼. 거기서 수잔나는 자기보다 훨씬 더 "미친" 아이들을 만나.


8년째 병원을 들락날락거렸다는 리사는 여자병동 환자들 사이에서 대장노릇을 해. 자신과 달리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에 수잔나는 점점 물들어.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서, 리사 역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란 걸 깨달아. 그때부터 자유에 관해 다시 생각하지. 거짓말로 퇴원한 데이지와 매번 탈출했다가 잡혀오는 리사. 두 사람 모두 병원 밖에서도 진정한 선택권을 되찾지 못하거든.


수잔나는 항상 불성실하게 임했던 윅 박사와의 상담에서 입을 열기 시작해. 공책에만 적어두던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지. 박사는 "무엇이 네 문제고, 그것이 정말 문제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야 방황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어. 나의 상황을 직면하고 갈무리하기. 그래야 해소할 단초라도 잡아본다는 거지.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도 모르겠다던 수잔나는, 마침내 "나중에 글을 쓰고 싶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그런 그녀에게 떨어진 경계 회복 진단. 수잔나는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의문을 느껴. 심리적 건강함을 인정받고 퇴원한 것에 대해, 그리고 본인이 진짜로 미쳤었는지에 대해.


윅 박사와 수잔나는 "양향성"이라는 단어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 박사의 말에 따르면, 심리학적 의미로 양향성은 [상반되는 강한 감정을 동시에 가진 것]이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미친 건지 미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만든 건지는 불투명해. 어쩌면 누구나 정상과 비정상의 양극단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로부터 60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선 전쟁과 폭동이 벌어지고 있잖아. 리사의 말마따나 거지 같은 세상이야. 그럼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세상 밖을 갈망했지. 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잘 살기를 바랐다고 믿어. 그냥 저버리기엔 속절없이 아름다울 때도 있으니까.



추신 -


영화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만큼 내 글도 혼란스러웠던 거 같아서 조금 미안해지네. <처음 만나는 자유>가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했지. 나는 여기에 또 다른 답을 내놓은 <경계선>이라는 작품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 꼭 봤으면 하는 영화야. 너의 답장을 기다릴게.



설모가.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를 돌본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