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최길효
5월의 어느 날 대표님이 회의실로 불렀다.
“길효님, 앞으로는 출근 안 하셔도 돼요.”
“네!? 저 짤렸나요?!”
“ㅎㅎㅎ 아뇨 저희 이제 100% 원격근무 하려구요.”
“아…(당황, 혼란, 안도, 동공 지진)”
이보시오 대표 양반, 출퇴근을 하지 말라니?!
5월 14일부터 플링크는 100% 원격근무를 시작했다. 보통 100% 원격근무라 함은 업무를 사무실이 아닌 집 혹은 다른 공간에서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의 원격근무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시간에 대해서도 완전한 자율을 부여하는 원격근무다.
원래 플링크는 8시에서 11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제도를 갖고 있었고, 2시간 이상의 연차에 대해서는 당일에 보고하더라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나는 이 제도를, 약속이 있을 때는 유동적으로 출근하거나 아침에 운동이 하고 싶으면 운동을 하고 출근하거나(3주째 안 나가긴 했지만), 금요일에는 가능하면 빨리 출근하고 퇴근해 빠른 주말을 즐기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겐 잠이 부족하면 하루 종일 멍청이가 되는 병(?)이 있었고, 덕분에 고3이나 대학 시절에도 밤샘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공부냐 놀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최소 6시간은 푹 자야 멀쩡할 수 있다)
지난 2번의 페이지콜 데이를 경험하며, 우리 서비스와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신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되었고 든든한 PM님의 입사와 함께 완전한 자율근무가 (생각보다 빠르게) 도입되었다.
이제 모든 플링크 팀원들은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곳에서’ 할 자유가 생겼다.
일은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것
이는 일을 시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태스크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시간 중심으로 일을 생각하면 우리처럼 자유로운 출퇴근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비효율은 발생하고, 이는 플링크가 추구하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는 것’과 부합하지 않기에 도전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변경하게 되었다.
태스크 중심으로 재편된 플링크의 업무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기존에 칸반 툴로서 트렐로를 활용하고 있었지만, 프로세스의 자유도가 높았던 점 때문에 오히려 구성원들은 트렐로를 사용하기 어려워했다. Jira의 경우, 정해진 프로세스를 사전에 설정하면 구성원들은 그 프로세스에 따라서’만’ 태스크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이는 오히려 자유도를 낮춤으로써 학습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것과 더불어 태스크를 통합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트렐로보다 우리의 방향에 더 적합했다. 초기 태스크 생성 및 설정과 관련해서는 세밀한 규칙과 룰이 생겼지만 이는 갓 PM의 가이드 하에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에픽 > 스토리 > 태스크 > 서브 태스크를 활용해 업무의 위계를 설정하고 있다. 에픽은 큰 목표로서, ‘플링크와 페이지콜과 관련한 브랜드를 구축한다’와 같은 장기적이고 큰 단위의 일을 작성한다. 스토리는 에픽의 한 단계 아래에 있는 업무로서 ‘제품 관련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한다’와 같은 에픽을 달성하기 위한 일부 업무를 정의해 규정한다. 태스크는 실무자가 해야 하는 업무로서 ‘주 1회 블로그 글 작성하기’와 같은 업무가 놓이게 되고 서브 태스크는 태스크를 수행하기 위한 세부 사항들, ‘블로그 글 소스 리서치’와 같은 업무들이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의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 1주간 자신이 수행할 업무 분량을 내부 협의를 통해 설정하고 실제로 수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율에 의존하는 업무 프로세스는 언제나 평가의 문제를 동반한다. 우리는 각 태스크 별로 내부 협의에 따라 포인트를 부여받고 이를 수행하면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 합산해 개인의 조직 기여도를 평가한다.
태스크와 관련해 우리는 개인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리서치, 자기계발(영어, 운동 등)도 태스크로 분류해 시간을 할애하고 완수하는 만큼 업무 포인트를 부여할 예정이다.
‘포인트를 부여하고, 완수하면 받는다’라는 평가 구조는 심플하지만 내부적으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개인과 조직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업무 프로세스가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팀에서 진행되는 이슈들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매주 목요일 11시, 전체 미팅을 실시하고 있다. 간략하게 금주 진행한 일, 차주 진행할 일을 공유하고 있다. (사실 피자를 먹기 위해 미팅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자유를 부여하지만 협업이 필요한 순간에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CS가 발생했을 때, 해당 책임자가 ‘오늘 쉴래’라고 생각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면 개인의 과도한 자유가 업무 수행을 방해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고 진행하기로 했다.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사전에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사라져야(?)하며 받은 연락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신속히 대답하는 것을 전체 팀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아직은 작은, 그러나 큰 변화
누구나 출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를법한 장면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가 출근을 하면 졸린 눈을 부비며 인사를 드린 후, 엄마 손에 이끌려 등교 준비를 하는 장면 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출퇴근은 너무나도 당연한 문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고정적인 출퇴근이 사라진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양날의 검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오전에는 영어공부와 운동을 하고, 오후에 출근해서 업무를 하면 좋겠다”라거나 혹은 ‘혼자 집에 있으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빈둥거리지 않을까’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1주일도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대로 준비해 출근한다. 그러다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으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간다. (지금도 사무실에서 일이 되지 않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확실히 글은 카페에서 더 잘 써진다.) 기존에 진행하던 업무 스케줄도 밀리지 않았고, 자율적으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어 더 빨리 일을 정리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큰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존과 성장이 함께 가능하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생존만이 가능하다. 정신없이 일하며 상승하는 퇴사 욕구를 월급으로 해소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8시간 일하세요’라는 것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에 하루를 통째로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언급했지만, 오전에는 잠깐 공부와 운동을 하고 오후에 집중해서 내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한다면 나의 발전과 조직의 목표를 함께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것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위워크에서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거나 아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아보고자 해외에서 업무를 할 수도 있다. 특히 내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매력적인 이유는 서울의 물가가 결코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서울에서 의식주에 투자하는 돈을 해외에서 사용하면 훨씬 양질의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자율근무를 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것 같다. 그때마다 글로서 내용을 정리하고 남길 것이다. 훗날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세상이 실현되고 이 글을 다시 읽게 되면 감회가 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