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를 할 때는 맡은 프로젝트를 잘 해내면 그만이었지만 팀장이 되고서는 프로젝트도 하면서 팀을 ‘관리’ 하는 많은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죠. 전체적인 수익 관리, 계약 관리, 학습과 성장, 상담과 코칭, 평가 관련 문서, 팀을 대표하는 별도의 보고서 등으로 정말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실무는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법론을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팀 전체의 발전도 없기에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전에 하루의 대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하고 더 빨리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모습에서 ‘실무를 할 시간이란 게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다른 팀장님들 말이죠. 한 때 제가 일은 안 하고 보고서만 친다고 험담 하던 분들 말입니다. ‘그분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겠구나’ 생각하면서 정치로 팀장이 될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을 잘해서 많이 해서 팀장이 되었을 텐데 팀장이 되고 달라진 환경에 맞설 힘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순응하고 관리자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방식에 저항하는 것도 트렌드를 모르는 것도 밑에 물어봐야 디테일을 아는 것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대한 관리를 중앙에서 편하게 만들어 주지 않으면,
실무에서 어떻게 하는 게 간편하고 효과적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보고의 형태로 갑자기 끼어들어 시간을 망치는 형태로 팀장들에게 떨어집니다.
물리적으로 뿌리고 취합받고 갑자기 누가 시킨 일이다고 말하면서 미리 준비할 스케줄을 공유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피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혹은 자신이 정리하기 싫어서 넘어오는 보고 서류의 종류와 관리 양식에 대한 고민은 고스란히 일을 해야 할, 더 잘하라고, 팀원들의 수준을 함께 올리라고 앉혀 놓은 팀장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몇 개 회사를 거친 경험으로 보고할 것, 관리할 것의 수만 봐도 이 회사가 잘 될지 안 될지 가늠이 가능합니다. 실무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이 복잡한 관리 비용 때문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MBO, 캐플런이 만든 BSC, 컨설팅 기업에서 주장하는 프레임들은 이렇게 많은 관리 비용을 만들라고 생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걸 녹여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중앙 조직 혹은 시스템의 개발에 몫을 둔 것이죠. 실무 팀장이 간트 차트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새로운 마케팅 기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든지, 아무리 좋은 공유 솔루션을 써도 거기 보고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장황하게 써야 해서 팀원들과 스터디할 시간이 없어서 학습은 패대기친다든지 하는 일은 지금 다급해서 장기적인 역량을 태워버리는 결과를 만듭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고 잘 알고 있다고 기획자나 경영진이 생각할수록 실무팀은 보고와 관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아닌지, 혹은 계획되지 않고 인계되지 않은 사항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괴롭게 보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무 공간이 이쁘고 호칭과 복리 후생이 좋아져도 몰입을 방해하는 많은 비 실무적 요인과 주도성 있게 할 수 없는 실무자의 시간이나 과업 정의가 존재한다면 힙한 사무실에서 퇴사자가 줄줄이 발생합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하는데도 다들 나갈까”를 퇴사한 개인의 성향이나 문제로 보지 말고 조직의 문제,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을 찾는 것으로 스스로의 디테일을 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디테일에 정말 악마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를 못해서 답답해하고 있는 팀장들께 당장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점점 관리 문서를 안 해가고 실무를 잘하는 fade-out이 제가 현실적으로 선택하 대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습니다. 신뢰를 만들고 다른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으니까요. 파일이 아닌 말로, 회의실이 아닌 복도나 자리에서 급하게 날아오면 제가 대신 막아 주고 야근했던 과정이 과도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관리자가 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일도 제대로 하면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팀장은 아직 실무의 퀄리티를 높이고 팀원들에게 같은 수준 이상의 플랫폼을 만들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팀원들을 나보다 더 업계에서 유명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할 때 나도 유명해질 수 있습니다. 함께 음력 새해에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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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