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 2개를 꼽으라면 단연코 “기생충”과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기생충”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왜 “자전차왕 엄복동”이냐. UBD(the Unit of Box office Dealings; Um Bok Dong)라는 유의미한 단위를 남겼기 때문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가 투자부터 제작, 배급까지 담당한 영화로,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셀트리온이 외부 투자 없이 150억을 온전히 투자하였으며, 결과적으로 172,213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VIP시사회에 직접 참석해 영화 제작 의도를 설명할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셀트리온 측의 애정은 대단했다.
“나는 약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낼 모레도 약을 팔러 일본에 가야한다. 개봉 시기도 비수기다. 돈벌려면 굳이 이렇게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 영화는 흥행보다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만들었다” – 서정진 회장, 2019년 2월 26일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
필자는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큰 관심이 없다. 필자가 보다 주목하는 지점은 ‘셀트리온이 영화를 만든다고? 걔네가? 갑자기? 왜? ’와 같은 종류의 낯섦이다. 이 같은 낯섦은 셀트리온과 “자전차왕 엄복동” 사이의 상관 관계를 처음 접한 시점에서도 그랬고, 그 사실을 안지 1년여 시간이 다된 현 시점에서도 변함이 없다.
또 다른 낯섦이 있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국내 대표 금융사의 대표들은 스타벅스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식음료 회사의 금융업 진출이라니, 낯설기도 하나 최근 몇 해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하도 언급해서 지겨울 지경이다.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모바일 결제 앱은 구글, 애플페이가 아닌 스타벅스 앱이다.” –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 2019년 1월 2일 신년사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회사가 아니라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라 칭해도 무방하다. 사이렌오더 하나면 전 세계 스타벅스를 별도 환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스타벅스는 백트(Bakkt)라는 암호화폐 거래소 파트너로 참가했다.” –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2019년 12월 31일 신년사
스타벅스가 금융사들의 경쟁상대라고 한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말이다. 스타벅스 하면 우선적으로 ‘커피,’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간’이라는 키워드까지는 자연스럽게 연상되며, ‘케이크,’ ‘차(tea),’ ‘Wi-Fi’ 등 키워는 어렵지않게 파생된다. 그러나 ‘금융’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 낯섦이 느껴진다. 다만 스타벅스-금융업의 낯섦은 셀트리온-엔터업의 낯섦과는 결이 다르다. 그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의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스타벅스의 금융업 진출은 본질에 부합하는가? 다시 말해, 스타벅스가 충족시키는 욕구는 금융업이 충족시키는 욕구를 포함하는가?
스타벅스가 충족시키는 욕구는 수년에 걸쳐 금융업을 포용하기 직전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어왔다.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3명의 창업자가 커피 원두를 팔며 시작했지만,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명예회장이 인수하며 그 이후부터 커피 전문점을 넘어 제 3의 공간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방향성은 2011년 로고에서 ‘STARBUCKS COFFEE’라는 글자를 지운 행보, 2017년 이후 매장 간판에서 ‘COFFEE’ 글자를 지우고 ‘STARBUCKS’만 남긴 행보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타벅스는 일찍이 공간과 문화를 판매하는 임대 사업자로 전환했다, 명품 로고 같은 브랜드 로고와 IT기술을 활용한 첨단 카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이율배반적이고 복합적인 가치가 녹아있는 독특한 공간 문화의 소비가 스타벅스가 충족시키는 욕구이다.
“We’re not in the coffee business. It’s what we sell as a product but we’re in the people business—hiring hundreds of employees a week, serving sixty million customers a week, it’s all human connection.” –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 2011년 3월 25일자 Forbes지 기사
“Starbucks CEO: Lesson in Communication Skills”
스타벅스 본사가 자사 매장에 고유한 느낌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직접 선정하고 이를 CD로 자체 제작 및 배포해 이를 재생하도록 한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더 이상 커피에 있지 않다. 스타벅스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같으면서도 다른 체험을 소비하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는다. 스타벅스는 지속적으로 공간, 그리고 그를 통한 사람 간 연결에 주목해왔으며 소비자들의 스타벅스 소비 행태는 정확히 이에 부합한다.
다시 금융업으로 돌아가자면, 실제로 스타벅스는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8년 10월 아르헨티나 현지 은행 Banco Galicia와 협력을 맺고 스타벅스 은행 지점을 개설했다. 중남미의 은행 시스템은 비체계적이며, 대면 업무의 가능성과 기회는 소수에게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어디에나 편재한 스타벅스 공간을 통해, 그것도 그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로 누구나 방문하고 싶어하는 공간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면 이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며, 나아가 고객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 은행에 방문한 경험을 되새겨 보자면, 은행 방문 시 은행원분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은행에 머무르는 시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타행 OTP 등록을 위해 방문한 것이었는데, 실 업무 처리 시간은 많아야 3분 정도였다. 그러나 은행에는 수많은 고객들이 있었고, 은행원과 마주하기 위해 대기한 시간은 30분 정도에 달했다. 지루했다. 그러나 그 공간이 스타벅스였다면, 지루하기는 커녕 커피와 함께하는 생산적인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해야할 점은, 스타벅스는 이연수익을 통한 현금 자산이 많아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통화로 쌓여 있는 예치금을 어떻게든 활용해야겠다는 전략으로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이 금융업을 위한 금융업에 치중하는 순간 스타벅스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스타벅스는 자사가 전 세계 각지에 보유하고 있는 매장을 통해 공간과 문화를 판매하고자 하는데, ‘마침’ 예치금이 12억 달러나 있어 금융업을 그 공간에 결부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스타벅스가 각국 법인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전환하여 이를 활용한다고 한들, 스타벅스에 있어 ‘전 세계의 스타벅스 고객이 어느 나라의 스타벅스를 매장에 가든 같으면서도 다른 공간을 소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한다는 명분과 소명,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본질을 더욱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비트코인은 수단이며, 금융업 역시 수단이다. 목적은 ‘공간’ 그리고 ‘경험’이다.
셀트리온,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정진 회장의 엔터업계 투자는 결코 뿌리가 얕지 않다. 최고 시청률 46.8%의 2013년작 “왕가네 식구들,” 2016년작 “청춘시대,” 최근의 “배가본드” 및 “나의 나라”까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이래 20여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들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제작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 광고를 소비함에 있어 누가 제작했는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볼만하면 보고, 노잼이면 안 보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사업이 있겠냐마는, 셀트리온의 소명은 유달리 ‘전략적 투자를 통한 대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정진 회장은 셀트리온그룹 홈페이지의 ‘Chairman 메시지’ 항목에서 “이렇게 힘든 사업인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인지도 몰랐습니다.”라고 말한다. 셀트리온의 신화에는 소명이 부족하다. 서정진 회장이 유망한 사업을 선택하고, 개인적 카리스마로 인재를 영입한 후, 자금을 쏟아부어 성과물을 내는 데 달인이란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서정진 회장은 성공한 기업가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정진 개인의 본질이지, 셀트리온의 본질은 아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 회사이며, 서정진 개인과 셀트리온을 동일 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항체 바이오시밀러와 기능성 화장품을 생산하는 셀트리온이 충족시킨 소비자의 욕구는 ‘기술’을 통한 ‘가성비’이다. 그리고 그 영역은 바이오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스타벅스의 커피와 금융업은 공간이라는 핵심 키워드로 매개되지만, 셀트리온의 바이오와 엔터업을 매개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PPL 정도이다. 셀트리온이 충족시키는 욕구에 (아직은) 엔터업이 없다.
(셀트리온 입장에서 엄복동 제작하는데 사용한 150억 정도는 푼돈이라고들 하지만,) 기회비용의 차원에서 바라봤을 때 셀트리온은 엔터업에 투자해야 할 것인가, 혹은 바이오에 투자해야 할 것인가. 셀트리온이란 기업은 바이오에 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는 셀트리온의 최근 행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만약 그 투자가 순전히 서정진 회장의 개인적 관심에 따른 투자라면 적어도 셀트리온 브랜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개인자산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셀트리온의 본질에는 엔터업이 없다. 셀트리온은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및 케미컬의약품 개발을 통해 인류의 건강과 복지 증진의 가치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종합생명공학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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