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의 도전, 그리고 결실
by 유재석 모비인사이드 디렉터
아이러니다. 배송 대행을 하지만 배달앱이라 불리기 원치 않는다. 모바일로 오프라인 매장과 고객의 집 문 앞을 연결하지만, O2O(Online to Offline) 스타트업이길 거부한다.
메쉬코리아 이야기다. 배송을 담당하는 이륜차 라이더 1만1000명과 제휴하고 있으며, 메쉬코리아의 배송 업무만 전담하는(지입) 라이더는 3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버거킹, 맥도날드, 미스터피자와 같은 프랜차이즈는 물론, 이마트, 롯데마트, 씨유와 같은 대형 마트, 편의점의 30분, 당일 배송을 대행하고 있다. 이용자, 배송 기사 모두 ’앱’을 통해 주문과 배송을 할 수 있다.
’그게 O2O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호기심은 5월 20일 서울 삼성동 메쉬코리아 사옥으로 발걸음을 안내했다.
“’IT에 기반한 물류 회사’로 불리길 원합니다.”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사진)는 인터뷰 시작 직후 이같이 회사를 소개했다. 너도 나도 IT와 스타트업으로 꾸미는 시대를 반영한 건 아니다. 그럴 거면 O2O를 내세우는 게 더 편할 터. 시간(X축)과 가격(Y축)의 함수 그래프를 통해 물류를 바라보니 새로운 시장을 보게 됐다.
“수학을 전공했고,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마쳤습니다. 이후 딜로이트 컨설팅, 바클레이즈 등의 컨설팅 펌과 금융회사를 다니면서 줄곧 배운 것은 파생상품의 가격 결정 모형, 가격 모델과 같은 것이었죠. 물류(Logistics)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IT와 가장 거리가 떨어져 있는 영역이기에 여기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2011년 설립된 직후 메쉬코리아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배달의 기본인 ’내비게이션’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김기사, 네이버지도, 티맵 등 기성 지도앱에서 안내해주는 경로는 사륜차 중심의 도로 안내였기에, 이륜차 중심의 경로를 안내할 필요가 있었다.
지도를 만든 뒤, 이제는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킬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했다. 머신러닝을 통해 자동배차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키면서 기사에게 최적의 경로로 최대의 효율을 통한 제품 배달 프로세스를 완성시켰다. 회사 설립 이후 3년 동안은 솔루션과 인프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셈이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현장을 경험하기 전에는 배송거리와 배송비 등을 요소를 고려하고, 100% 기계학습을 통해 효율성이 향상되는 자동 배차 솔루션을 저희들의 능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어요. 또 처음에는 하나의 주문을 받아 기사님께 전해드리고, 그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을 소개해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작 서비스를 시작하고 보니, 이런 병X 같은 프로그램이 어디 있냐고 배달 대행 기사님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죠” - 메쉬코리아는 ’배달 기사님’을 섬기기 위해 일합니다(아웃스탠딩)
결국 초기 멤버를 제외하고 모두 유 대표를 욕하면서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왔다.
“직원들 대부분이 떠나고, 초기 멤버였던 개발팀 정도가 회사에 남았습니다. 그제서야 ’직접 현장을 밟아보자’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족발집, 분식집, 순댓국집 등 수많은 골목 상점들을 오가면서 참 많이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명함을 드리자마자 족발 자르는 칼로 두동강을 내기도 하더군요. 그때 깨달은 게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이정도로 환경이 척박했구나’와 ’그래서 나간 사원들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었구나’였습니다.”
유 대표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도마 위 두 동강 난 명함을 보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더 많이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리는 거’라고 설득을 하고자 했는데, 그제서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단다.
“아주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너 같은 사람들 참 많이 왔어. 돈 벌어주겠다고 해놓고 마진도 안나오는 값에 팔라고 해놓고 배달해가더라. 너네만 돈 벌고 우리는 더 힘들어지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라고요. 뒤통수를 여러 번 크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배송 기사와 이용자, 매장을 연결하도록 설계된 우리 시스템을 잘 도입하면 시장이 커지겠구나’라는 저만의 이론이 박살난 순간이었죠.”
점주만 설득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배송 기사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숙제였다. 이들 역시 배송 중개 서비스에 대한 불신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래 영상을 통해 배송기사들의 처참한 일터 환경을 엿볼 수 있다.
분명한 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피크타임에 집중적으로 배송을 담당해줄 기사가 필요하며, 기사들 역시 배송을 통해 합당한 수익을 얻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다.
편리한 앱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 그러나 키맨이 없었다. 이를 진두지휘할 오프라인 물류 전문가가 필요했다. 우연처럼 인연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제휴 요청차 찾아갔던 11번가에서 전광일 본부장을 만나게 됐다.
“5개월동안 전광일 본부장님 집이 있는 파주에 찾아가 사모님까지 같이 설득해 메쉬코리아로 모시게 됐습니다. 메쉬코리아로 합류한 뒤 오토바이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배송, 물류의 제반 시설 청사진을 그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가 전국 기반으로 대형 화주의 물류까지 담당할 수 있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죠.”
이게 끝이 아니다. 결제모듈 및 단말기를 자체 개발해 자사의 인프라에 이식시키는 데에 이른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점주와 배송기사에 대한 합리적인 수익배분(RS), 그리고 피크타임 패턴 분석을 통한 효율적 배송.
“저희는 업계 최초로 여신금융 인가를 받아 자체개발결제모듈 및 단말기를 배포했습니다. 기존 배송 대행 프로그램들이 점주나 기사에게 일방적인 가입비를 받아내거나, 강매를 하는 소위 ’갑질’의 사례가 많이 발생했는데요. 저희는 이 모든 데이터를 투명하게 오픈해 올바른 수익 배분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제휴된 매장들의 주문 패턴을 분석해서 적절한 위치에 기사를 배치한 뒤 빠른 속도로 배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됐죠. 저희가 편의점 씨유와 제휴해 30분 내 배송을 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B2C용 배송 대행 서비스 '부탁해'와 B2B용 '메쉬프라임', 그리고 배달대행 전용 소프트웨어 '부릉'을 통해 30분 배송, 당일 배송을 성공시키자 시장이 주목했다.
버거킹, 맥도날드, 롯데마트, 이마트 등 모두 자체 배송 기사를 구비하고 있음에도 메쉬코리아의 손을 잡길 원했다. 이들도 자신만의 인력으로 피크타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메쉬코리아는 단순한 O2O앱을 만들어주는 회사가 아니었다. O2O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제반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IT기반 물류 기업이었다. 보여주기식 마케팅을 기반으로 기존 시장의 파이를 뺏어먹기보다는, 아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서 점주-기사-고객의 배송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돈만 위해서는 이런 사업 안하죠.”
유정범 대표의 시장을 바꾸고자 했던 의지는 분명했고, 지난 5년 간 철저히 실천에 옮겼다. 마침내, 모든 것을 스스로하지 않고도 연결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시장이 인정했다.
보이기식 마케팅, 겉핥기식 서비스가 아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측면에서 메쉬코리아의 향후 5년 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